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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Jul 19. 2024

목우씨의 긁적긁적(72)

제72화 : 원치 않는 '침침 세상'

       * 원치 않는 ‘침침 세상’ *



  우리나라 3대 거짓말에 ① 노인들의 ‘늙으면 죽어야지’, ② 장사치의 ‘밑지고 판다’, ③ 처녀의 ‘절대 시집 안 간다’가 있다. 다만 요즘 들어선 이 거짓말이 참이 되기도 한다. ‘병들어 늙어갈 바에야 죽는 게 더 낫다’든지, ‘워낙 장사가 안 돼 손해 보고 넘길 때가 있다’든지, ‘결혼 희망 않는 미혼여성이 70%에 이른다’든지...


(KBS. 2012.10.25 - '판사들의 막말 모음집'에서)



  <하나 : 고령 운전자의 차 몰기>

  지난 3주 동안 뉴스에 난 대형 교통사고만 들먹여도 참 마음이 착잡하다.

  7월 1일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에 아홉 명이나 숨진 서울시청 앞 역주행 참사, 7월 6일 서울 용산 한 주유소 앞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차가 행인 2명을 친 뒤 근처 벽을 들이받고서야 멈춤, 7월 13일 서울 성북구 모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주차된 차량 1대와 오토바이 여러 대를 들이받고 전복됨.

  이들 사고의 공통점은 고령의 운전자가 몰아 일어난 사고인데, 모두 한목소리로 자기 잘못이 아니라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이어지자 그에 관련된 뉴스가 계속 나왔다. MBC(2021.02.28)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지난 2019년 33,000여 건으로 5년 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교통사고 100건 당 사망자 수는 65세 미만 운전자가 1.7명인데 반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9명으로 80% 가량 더 높았다.
  그래선가, 이런 결론까지 나왔다. ‘나이 많을수록 사고량이 증가하고, 특히 사망 사고 같은 대형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난다.’




  우리 부부가 현재 사는 곳을 옮기려 하는데 이유가 서로 다르다. 아내는 낡은 집 대신 편리한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 해서, 나는 운전 때문이다. 운전 때문에? 칠팔 년 전 이웃마을에 교통사고가 두 건 크게 났는데, 그 사고로 한 분은 돌아가시고 다른 한 분은 아직 후유증으로 고생하신다. 사고 당시의 나이는 70대 초반.

  그 뒤 아는 이들 만날 때마다 이리 말한다. ‘일흔이 되면 운전면허증을 반납할 거다.’라고. 내겐 나쁜(?) 성격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에게 약속하거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점.

  몇 모임에서 일흔 되면 운전면허증 반납하겠다 했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일 년 뒤 반납하지 않는다 하여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내가 괴로워 못 견딘다. (혹 MBTI 맹신자들은 이걸 보고 내 성격 짐작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달내마을에 계속 사는 한 ‘차’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버스가 하루에 여섯 번 두 시간마다 다니는데 그마저 더 줄어들 예정이란다. 택시 타고 다님도 한두 번, 그것도 양남 방면에서는 밤 8시 넘으면 불러도 올 택시가 아예 없다.


(농민신문 2018.12.17)



  <둘 : ‘깜빡깜빡’ 병>


  닷새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후보 연설 중 저격당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저격수의 총알이 빗나가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하여 여파가 좀 가라앉는 듯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헌데 후보로 나온 바이든과 트럼프 두 사람을 보면서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미리 말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노선을 두고 말함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는 절대 아니다. 바이든은 81세, 트럼프는 78세. 그 나이에 다시 세계 최강국 대통령 하겠다고 나서는 그 건강이 부럽다는 뜻이다. (다만 바이든은 가끔 나이에 걸맞는 실수를 해 다소 위안이 되지만)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 꿈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 같은 홍준표 대구 시장도 73세(2027년 대통령 선거일 기준), 올 4․10 총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박지원 의원도 82세인데 의원직 끝날 때면 85세가 된다. 이들 정치인의 기억력은 도대체 얼마나 뛰어나기에 가능한가.


(연합뉴스 2024.07.14)



  거기 비하면 너무 부끄럽다. 솔직히 어제 있던 일도 잊어버릴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아침에 오늘 할 일 적어놓고는 잊어버리기도 한다.
  얼마 전 졸업한 지 40년 지난 공고 제자들이 만나자고 하여 나갔다. 딱 한 명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 안 났다. 한 명은 해양소년단 단원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 명은 친구의 외조카임을 들먹이면서 나의 기억 뚫기를 노렸건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요즘 ‘깜빡깜빡 병’이 더 심해졌다. 부고나 결혼 소식 받아도 바로 챙기지 않으면 까먹는다. 심지어 아침에 할 계획을 칠판에 적어놓았지만 저녁이 되어서야 ‘아차!’ 할 때가 많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healtip 2022.05.02)



  <셋 : 기대수명>


  두 달 전 건강검진 한 결과통지서를 받았다. 예상대로(?) 좋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걸 거론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기대수명’란에 눈이 갔다. 나의 기대수명은 84세로 돼 있었다. 아직 15년 더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또래 다른 사람보다 많은지 적은지 알 수 없지만 처음 본 심정은 ‘생각보다 오래 살구나!’였다. 왜냐면 이런저런 병이 몸에서 떠나가지 않기에. 기대수명은 현재의 건강 상태로 보아 교통사고 같은 불의의 사고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중병으로 죽지 않을 때 살 수 있는 나이라 한다.

  아버지(71세)보다는 오래 사는데 어머니(85세)보단 일찍 간다. 그래도 마지막 10년을 중풍과 치매로 연명한 울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죽고 싶어도 의사가, 아니 병원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하니 좀 더 오래 살지 모르나 그만큼 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신문 2020.12.01)



  아는 의사에게 들으니 환자가 병을 앓다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으면 처음엔 다들 절망하지만 시간 흐르면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어차피 가는 것 좀 더 일찍 갈 뿐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는 사람과, 빨리 죽기 싫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으로.

  조물주가 아예 이리 판정 내리면 어떨까. ‘정 아무개는 2039년 10월 6일 하늘에서 저승사자가 와서 데려간다.’ 하는 식으로. 지금 나더러 저승사자가 와서 기대수명에 사인하겠느냐면 사인하리라.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다. 죽을 때까지 잔병치레는 모르겠는데 암이나 치매 같은 중병으로 투병하며 살아야 한다든지 하면 계약을 포기하겠다고.

  아 눈도 침침, 몸도 침침, 기억도 침침, 마음도 침침, 사랑도 침침, 모든 게 침침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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