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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Nov 08. 2024

목우씨의 산골일기(189)

제189화 : 미워할 수 없는 찔레

    * 미워할 수 없는 찔레... *          



  칡넝쿨, 환삼덩굴, 찔레. 이 셋은 언제나 시골 사는 이들을 절망케 한다. 뽑아도 뽑아도, 잘라도 잘라도 더 번창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도 가시란 핵무기를 장착한 찔레는...

  그런 찔레가 우리를 두 번 황홀하게 만든다. 하이얀 찔레꽃으로 하여, 빠알간 찔레 열매로 하여. 찔레는 가시가 있어 자칫하면 찔린다. 바로 이 ‘찔린다’에서 ‘찔레’가 나왔다는 어원설이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 있다.     


  먼저 찔레꽃은 선조들에게 아픔을 주는 꽃이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인 음력 4월부터 5월에 드는 가뭄을 ‘찔레꽃가뭄’이라 한다. 꽃이름에 가뭄이란 말이 붙다니... 이때가 모내기할 즈음이며 가장 물이 필요한데 가뭄 드니 배고픔의 아픔을 예견하는 꽃이 되었다.     

  배고픔을 참고 모내기하다 길가에 핀 찔레꽃을 따서 입에 넣으면 아쉬우나마 배고픔을 잠시 잊게 해 준다. 찔레꽃을 맛보지 않아 궁금하신 분들은 봄에 따서 한 번 드셔보시길. 의미나 낭만 찾아 먹기엔 모르겠으나 맛으로는 딱히 권하고 싶지 않다. 




  그에 비하면 찔레순은 다르다. 아마도 맛본 이가 꽤 되리라 여기는데 일단 찔레순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약간 아린 맛이 나지만 단맛이 더 강해 먹기 괜찮다. 지금이야 이 정도 군것질거리가 얼마나 많으랴. 그러니 굳이 찾아서 먹기엔 그렇고 추억의 맛으론 괜찮은 편이다.     

  요즘 마을 한 바퀴 길에 만나는 이쁜 손님이 바로 찔레 열매다. 이 찔레 열매를 나 어릴 때 자라던 동네에서는 ‘까치밥’이라 했다. 감을 따다 말고 남겨둔 몇 개의 감만이 까치밥이 아니라 찔레 열매도 먹이 구하기 어려운 겨울엔 새들이 찾는 먹잇감이 된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먹이란 먹이가 다 눈에 파묻혀 전전긍긍할 때 새들은 찔레 열매인 까치밥을 쪼아 먹으며 겨울을 지냈다.


  찔레 열매를 까치밥이라 하면 더러 들은 적 있겠지만 또 딴 이름으로 ‘찔레밥’이라고도 부른다. 어릴 때 들었던 말을 그 뒤 한 번도 듣지 못해 내가 잘못 들었는가 하여 잊고 살았는데, 달내마을로 온 이듬해 아랫집 가음어른에게서 또 들었다.

  혹시 다른 지역에서도 ‘찔레밥’이란 말을 쓰는가 하여 인터넷을 뒤졌지만 나오지 않은 걸로 보아 대중화되진 않은 모양이다. 어릴 때 찔레밥을 종종 먹곤 했다. 금방 익은 가을에는 먹을 수 없으나 겨울이 돼 단맛이 들면 꽤나 먹을 만하다.


(찔레순)


  여기 달내마을 온 산과 들에 찔레가 판을 치니 가끔 지나다 찔레순 찔레꽃 찔레밥을 먹는다. 맛으로서보다 그냥 추억 삼아. 왜 찔레열매를 찔레밥이라고 했는지 가만 생각해 보니 주로 아주 가난한 동네에서나 쓴 말로 보인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수 있는 모든 열매는 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찔레밥’이란 말을 썼는지 모르겠다. 열매에 ‘밥’이 붙은 다른 예로 솔순에서 소나무꽃(송화 : 松花)이 필 때 어떤 솔순은 흰빛을 다른 솔순은 노란빛을 띤다. 이 흰빛 솔순을 ‘쌀밥’, 노란빛 솔순을 ‘보리밥’이라 했다. 다분히 모양과 빛깔의 유사성에서 붙인 이름이다.     


(찔레밥)



  당연히 둘 다 먹어봤지만 보리밥은 한 번 먹어보곤 뱉어냈으나 쌀밥은 먹을 만했다. 다만 많이 먹으면 악성 변비에 걸리지만. 솔순이 시간 지나 송홧가루가 될 즈음이면 그 소나무꽃을 모아 쌀가루랑 섞어 떡을 만들거나 부유한 집에선 다식을 만들기도 했다.     

  찔레밥 즉 찔레 열매를 한자로 '영실(營實)'이라 하여 한약재로 쓰는데 이뇨제 해독제로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찔레밥을 겨울에 까치 같은 새가 좋아한다고 했듯이 동네 형들은 꿩 잡으려고 이 속에 청산가리를 넣기도 했다. 잡자마자 내장 떼냄은 당연. 


  찔레뿌리도 찔레의 성가를 높이는데 한몫한다. 한의학에선 장미근(薔薇根)이라 하는데 이질, 당뇨, 관절염에 좋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찔레나무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찔레순, 찔레꽃, 찔레밥, 찔레뿌리. 이렇게 모든 부분에 이로움 주는 식물이 또 있을까. 


(찔레뿌리)


  허나 나는 시골에서도 산골에 살고 있는지라 찔레나무가 너무 싫다. 그 녀석이 얼마나 잘 번지는지... 시골살이해 보면 다 잘 알리라. 찔레 칡넝쿨 환삼덩굴의 몹쓸 행패에 이 갈아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봄에 쑥, 여름에 쑥쑥, 가을에 쑥쑥쑥... 한 해 지나면 쑥쑥쑥쑥이다. 정말 생명력 강하다. 뽑아도 뽑아도 죽지 않는다. 우리 집은 앞뒤와 양옆이 다 숲과 언덕으로 돼 있으니 더욱 심하다. 봄에 갓 올라올 때는 자르고 뽑고 하지만 여름에 접어들면 포기한다. 

  오죽했으면 칡과 찔레가 세상을 점령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내용을 우화를 쓸 생각을 했을까. 참말로 징그러운 녀석들이다. 그럼에도 왜 오늘 이렇게 찔레를 예찬하는(?) 글을 썼을까. 자연은 사람과 달리 무조건 미움만 주지 않는다. 사람은 미운 사람은 한정 없이 밉지만 자연은 밉다가도 이내 고움도 줘 마음을 풀어지게 만드니까.




  그 미운 칡넝쿨도 꽃이 필 때면 참 좋다. 눈으로도 즐겁지만 그 향기가 매우 달콤하니까. 코를 갖다 대면 꿀향이 바로 들어온다. 찔레나무도 꽃이 피면 그렇지 않은가. 이연실의 「찔레꽃」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니까.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장사익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이러니 늘 미워할 순 없지 않은가. 가끔 이쁜 구석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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