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중 시인(1960년생) :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8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여러 대학 강사를 거쳐 1997년 이후 전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전남 광양에 자리한 '이균영 문학동산')
<함께 나누기>
저는 가끔 돌아가신 분들에게 말을 건네곤 합니다. 술 좀 얼큰하면 찾는 분이 몇 분 계십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겐 '미안합니다' 하고, 신영복 교수님과 법정 스님에겐 제게 수필의 묘미를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는 말을.
가끔 시인들도 가끔 시를 통해 돌아가신 분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곤 합니다. 이를 ‘죽은 자에게 말 걸기’라 하더군요.
오늘 시는 부제에서 보다시피 30년 전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이균영 씨를 기리는 시입니다. 소설에 관심 많은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중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문학상이 [이상문학상]임을.
이균영 작가는 제8회(1984년) 수상자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제29회 수상자임) 이 정도면 대단한 작가인데 이에 못지않게 뛰어난 역사학자입니다. 원래 전공이 사학이었는데(생존 시 동덕여대 사학과 교수) 그 분야 뛰어난 학자에게 주는 [단재학술상]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유명 소설 작가로 뛰어난 한국사 연구학자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분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분이 45세이던 199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그때 문학과 사학계에선 충격을 받았지요. 한참 글 쓸 나이인데.
그래서 이분의 이름 앞엔 이런 말이 붙습니다. ‘비운의 천재 소설가와 역사학자’로. 만약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많은 업적 남겼을지.
시로 들어갑니다.
“심야에 일차선을 달리지 않겠습니다”
소설가 이균영은 그날 새벽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집으로 택시 타고 가던 중, 마주 오던 다른 택시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정면충돌하여 사망하셨답니다. 그때 만약 2차선으로 갔다면 충돌을 면했을 텐데 운 나쁘게 1차선으로 달렸기에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그런 뜻을 담았음인지...
“남은 날들을 믿지 않겠습니다”
'남은 날들'은 미래의 날들입니다. 다들 미래를 기다리건만 미래를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상하게도 좀 더 살아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은 일찍 데려가고, 하루라도 빨리 데려가야 할 사람이 천수 누림을 보면 미래가 꼭 좋지만은 않다고 여겼을지도.
“건강한 내일을 위한다는 핑계로는 / 담배와 술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 시행뿐이 아니라 이어지는 많은 시행이 어깃장 놓기(어떤 일을 어그러지거나 바로 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늘 어깃장 놓으면서 살 수 없겠지만 때론 어깃장이라도 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세상이 나아갈 때.
“여자의 몸을 사랑하고 싱싱한 욕망을 숭상하겠습니다”
어깃장 놓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여자의 마음을 먼저 사랑해야 함에도 몸을 사랑하고, 육욕을 벗어나야 함에도 거기에 빠지겠다고 합니다. 이런 어깃장의 반대편에 이균영 작가가 있는 듯. 즉 그분은 그런 어깃장의 저쪽에 있기에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울지 않겠습니다”
반어법입니다.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는데 울지 않겠다고 했으니까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하나 속으론 엄청나게 큰 슬픔을 담은 표현입니다. 반어법적인 표현은 거꾸로 읽으면 됩니다. '~~ 하지 않겠다'를 '~~ 하겠다'는 식으로. 즉 ‘울지 않겠다’가 ‘울겠다’로 됩니다.
혹 짬나시면 이균영 작가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웬만한 도서관에 다 비치돼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