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43)

제243편 : 전숙 시인의 '나이든 호미'

@. 오늘은 전숙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나이든 호미

전숙


나이든 호미가 힘들어 보여 젊은 호미를 샀다.

김을 매는데, 젊은 호미는 다짜고짜

풀숲에 달려들더니 날카로운 손톱을 바짝 세우고

풀뿌리를 댕강댕강 막무가내로 끊어놓았다.

날이 밝자 글쎄,

잘려진 풀뿌리에서 새움이 쏘옥

혓바닥을 내미는 것이었다.

내버리려고 두엄자리에 던져둔

나이든 호미를 다시 집어 들었다.

오랜 노동에 시달려 손끝이 뭉툭해진

나이든 호미는 *바랭이에게 무어라

어르고 달래는 것 같더니

바랭이는 이내 움켜진 손아귀를 스르르 풀어주었다.

실뿌리 한 올까지 호미에게 내어준

마음이 기꺼운 햇볕에 순해진 눈물을 말렸다.

나이든 호미는 꺽정이의 뿌리에 올라탄

설운 흙덩이를 가만가만히 털어주었다.

눈물의 무게를 덜어낸 *불설움이

하늘 언덕에 기댄 채

노을 속으로 아슬히 저물어갔다.

- [나이 든 호미](2009년)


*. 바랭이 : 논이나 밭, 논둑이나 밭둑에 자라는 잡초

*. 불설움 : 몹시 서러움. 김소월 님의 「접동새」란 시에 ‘누나라고 불러보랴 / 오오 불설워’가 나오는데 거기서 따온 걸로 보임.


#. 전숙 시인(1956년생) : 전남 장성 출신으로 2007년 [시와사람]을 통해 등단. 보건소 소장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지역과 경계를 뛰어넘는 왕성한 시 관련 활동을 함.




<함께 나누기>


이 시를 처음 읽으면 무슨 뜻인지 좀 애매합니다. 한 번 더 읽으면 어느 정도 느낌이 잡힐 겁니다. 화자는 오래된 낡은 호미가 땅을 잘 파고들지 못해 새(젊은) 호미를 사 김을 맵니다.

역시 기대대로 젊은 호미가 늙은 호미가 못 자른 잎은 물론 뿌리까지 막무가내로 끊어버립니다. 그러면 만족스러워야 하겠지요. 허나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화자는 불만스럽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도무지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아.


“나이든 호미가 힘들어 보여 젊은 호미를 샀다”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낡은’ 또는 ‘오래된’ 그것도 아니면 ‘녹이 슨’이라 하면 되련만 ‘나이든’이란 시어를 썼으니까요. ‘나이든’이란 시어를 썼으니까 대립되는 시어가 자동적으로 ‘젊은’으로 나왔을 터. ‘새 호미’보다 ‘젊은 호미’가 좀 더 강렬합니다.

“날이 밝자 글쎄, / 잘려진 풀뿌리에서 새움이 쏘옥 / 혓바닥을 내미는 것이었다”


젊은 호미가 풀만 벨 줄 알았는데 너무 잘 들어서 풀뿌리까지 막무가내 잘랐습니다. 이왕 죽이려면 뿌리를 뽑으면 되련만 호미로 난도질하다니. 마구잡이로 잘려진 풀뿌리에서 새움이 쏘옥 나옵니다. 마치 자기를 난도질한 젊은 호미에게 항의라도 하듯이.


“내버리려고 두엄자리에 던져둔 / 나이든 호미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내버리려고 한 구석에 던져둔 잘 들지 않는 호미 왜 다시 들었을까요? 나이든 호미는 뿌리를 자르지 못하나 뽑아낼 수는 있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살 때와 마찬가지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풀이라도. 젊은 호미의 행패에 오기로 버티던 바랭이도 그제사 나이든 호미에게는 자신을 맡깁니다.


“실뿌리 한 올까지 호미에게 내어준 / 마음이 기꺼운 햇볕에 순해진 눈물을 말렸다”


바랭이라는 잡초에게 나이든 호미가 젊은 호미의 난도질보다 낫습니다. 강제로 상처 내며 죽이기보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기에. 시인은 이 순간 바랭이란 풀에 빙의돼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죽을 때라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저는 이 장면이 이해가 됩니다. 풀을 뽑지 않고 예초기로 자를 때마다 풀비린내를 느꼈으니까요. 작업의 편의상 예초기를 쓰지만 풀잎이 난도질 당해 산산이 부서져 날리는 모습이 결코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 시에서 '나이든 호미'와 '젊은 호미가 단순히 녹슨 호미와 새 호미를 뜻하지만 않구나 하고 깨달으면 시 이해는 끝났습니다. 나이든 호미가 뒷방늙은이 취급받는 기성세대라면, 젊은 호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신세대를 상징합니다.

‘이제 그만 쉬라고 두엄자리에 내던져진’ 나이든 호미는 요샛말로 하면 중심에서 벗어난 한물간 늙은이입니다. 그에 반해 ‘날카로운 젊은 호미’는 디지털화된 요즘 세상에 잘 적응해서 쓱싹쓱싹 냉정하게 빨리 일 처리하는 젊은이들이고.

그런데 나이든 이의 눈에는 젊은 이들이 잘못하는 부분도 보입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능력이야 대단하나 배려의 마음이 부족하다는 점. 조금 늦게 완성해도, 조금 능률이 떨어져도, 조금 적게 수확해도 묵은 장맛 같은 지혜를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을 시에 담지 않았나 합니다.


*. 낡은 호미와 새 호미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 저녁에 시 공부 뒤 올릴 준비 끝내면 '아 오늘도 멋진데!' 하며 뿌듯하다가, 아침에 보내기 직전 다시 읽으면 제대로 해석했나 하는 두려움이 입니다.

그래서 늘 하는 말, 제 해설은 다만 참고로만 하시길. 엉터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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