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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44)

제244편 : 유용주 시인의 '붉고 푸른 못'


@. 오늘은 유용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붉고 푸른 못
유용주

나무는
땅에 박힌 가장 튼튼한 못,
스스로 뿌리내려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만신창이의 흙은
안으로 부드럽게 상처를 다스린다

별은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
뿌리도 없는 것이
몇 억 광년 동안 빛의 눈물을 뿌려댄다
빛의 가장 예민한 힘으로 하느님은
끊임없이 지구를 돌린다

나는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한 못,
튼튼하게 뿌리내리지도
아름답게 반짝이지도 못해
붉고 푸르게 녹슬고 있다

소독할 생각도
파상풍 예방접종도 받지 않은 그대, 의
붉고 푸른 못
- [가장 가벼운 짐](2002년 재간)

#. 유용주 시인(1960년생) : 전북 장수 출신으로 1990년 첫 시집 [오늘의 운세]를 펴내 뒤, 다음 해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인데, 중국집 배달원, 제빵공장 화부, 신문팔이, 목수,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낸 시인. ‘경험하지 않은 일은 절대 쓰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 함.




<함께 나누기>

못은 시의 글감으로 제법 많이 쓰였습니다. 상처, 아픔, 희생, 이음 같은데 쓰기 좋으니까요. 시에서 중요한 상징에는 '관습적 상징'과 '창조적 상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몸에 박힌 못'은 희생을, '어미 가슴에 못을 박은 죄' 할 땐 아픔을 드러내듯이.
이런 관습적 상징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여 듣는 순간 그 의미가 팍 떠오르는데, 오늘 시에선 못을 두고 시인이 창조한 상징이 쓰였습니다. 나무를 땅에 박힌 못, 별을 하늘에 박힌 못으로 비유한 경우는 처음 봤으니 시인이 창조했다 봐야겠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나무는 / 땅에 박힌 가장 튼튼한 못"

나무를 땅에 박힌 못에 비유함은 처음 보기도 하지만 읽는 순간 그 느낌이 바로 확 닿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못은 아래로 박혔을 때 가장 강한 결속력을 가진답니다. 한 번 뿌리내린 나무가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은 까닭과 연결시킵니다.

"별은 /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가장 튼튼한 못이라면, 별은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이라는 표현. 땅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와 달리 별은 뿌리도 없이 몇 억 광년 동안 그 자리서 빛의 눈물을 뿌려댑니다. 어쩜 표현이 이리도 멋질까요.

"나는 /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한 못"

나무와 별은 '가장 ~~한 못'이란 수식어를 달고 나왔지만 사람인 나는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한 못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튼튼하지도 가장 아름답지 못하고. 나무와 별은 사랑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할 뿐 받으려 하지 않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인간의 사랑은 단순히 대가를 바람에 그치지 않고 너를 붉고 푸르고 녹슬게 만듭니다. 즉 상대를 다치게도 합니다. 철 종류는 습기와 접촉하면 녹이 습니다. 그때 가장 철을 부식시키는 녹은 붉고 푸른빛이라 합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깊이 상처 준단 말이겠지요.

"소독할 생각도 / 파상풍 예방접종도 받지 않은 그대, 의 / 붉고 푸른 못"

우린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하고 있습니까? 자식에게, 부모에게, 연인에게 등 가까운 사람에게. 그 폭력은 아예 일어서지 못하도록 완전히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이 순간 갑자기 데이트 폭력으로 인생 종친 뉴스가 떠오름은...)
나무는 땅에 박혀 있으면서 주변의 흙을 다독이고, 별은 하늘에 박혔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게 박아 준 못은 모두가 독이고 상처가 됩니다. 사랑이란 이름의 독, 지금 가까운 이들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은 과연 어떠합니까? 설마 독은 아니겠지요?


<뱀의 발(蛇足)>

유용주 시인은 초등학교 졸업한 열네 살에 중국집에 '속아서 팔려 간' 이래 가난과 노동의 삶을 견디어야 했고, 그렇게 세상에 나와선 식당종업원, 생선가게, 보석가게, 신문팔이, 술집 지배인, 목수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얼마나 삶의 무게가 무거웠을까요? 혼자 몸으로 감당하기 벅찬 무게. 허나 그는 홀로 일어섰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문학수업받은 적 없는데,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대학과 교직에서 저는 숱하게 문학을 접했건만 시 한 줄 못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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