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 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 지폐 한 장이면 족한 그 집에서 일년 치 만남을 단번에 하자고 - [엄마와 어머니 사이](2015년)
#. 목필균 시인(1954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95년 [문학21]을 통해 등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퇴직 후 열심히 시를 쓰며, 여러 시낭송회 등에서 활동 중. (참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미리 밝힙니다. 남자 아닌 ‘여성 시인’입니다.)
<함께 나누기>
한 해를 보내면서 아는 이에게 인사말 보낼 때 가장 많이 쓰는 상투어,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사건은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나라 밖의 뉴스는 그만두고라도 올 한 해 우리나라 참 많이 어지러웠습니다. 결정타는 12월 비상게엄, 그리고 그저께 들려온 참담한 항공 사고. 이제 눈물샘도 메말라 흘릴 눈물도 없다는 애절한 절규. 곳곳에서 들려오는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 있나!’ 하는 탄식. 정말 올 한 해 가운데서도 12월 한 달만은 꼭 지우고 싶습니다.
목필균이란 시인은 어제 송년을 글감으로 한 시를 찾아 뒤지다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시인을 택할 때 원칙이 둘 있습니다. 너무 감성만 후벼 파는 시인은 피한다, 삶과 글이 괴리된 시를 쓰는 시인도 피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목필균 시인은 처음이라 잘 모릅니다. 특히 이름을 보고 시를 읽고선 남자 시인인 줄 알고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러다 여성 시인임을 알고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붙잡았습니다. 한 해를 보낼 때 허전함을 달래는 시로 적당하다고 여겼기에.
오랜 관습으로 한 해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친한 이들과 함께 모여 술 한 잔 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를 '망년회' 또는 '송년회'라 하지요. 이 둘은 엄연히 차이가 납니다. 망년회(忘年會)는 일본식 한자에서 온 말로 '송년회'를 써야 어법에 맞다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망년회를 두고 얘기를 풀어갑니다. 망년회(忘年會), 잊을 '忘' 자니까 한 해 있었던 좋지 못한 일들을 잊고 새해부터는 마음을 다잡아 새롭게 출발하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멋진 뜻풀이이긴 하나 좋지 않은 일 가운데 잊어야 할 일이 있고, 절대로 잊어선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올해 어떤 일을 잊고, 어떤 일은 잊어선 안 되는지 관해선 글벗님들이 판단하실 문제겠지요. 다만 잊어선 안 될 일을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치면 반드시 그런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리라는 점은 명명백백합니다.
오늘 한 해 마지막 날입니다. 나쁜 일은 털고 밝은 내일을 맞이합시다. 또한 시에서처럼 혹 무심했던 사람이 있다면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그리 많은 돈도 필요 없는 선술집에 서서 소주잔 기울이며 일년 치 못다 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한 해를 마감하면서 성과물이 조금 허술해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 줬다 해도 내년엔 그렇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하루를 보냅시다. 너나 나나 특출하지 않고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왔음이 참 다행으로 느껴지는 오늘,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외쳐봅시다. 한 해 참 힘들게 사셨으니 오른쪽 주먹으로 왼쪽 어깨를, 왼쪽 주먹으로 오른쪽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 봅시다. '너에게 다시 나의 내년을 맡긴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