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돌이 정다운 건 해남 *대둔사 성보박물관 앞뜰 석축을 보면 안다 큼직한 돌덩이 사이사이에 박힌 살결 고운 잔돌들, 보아라 당당한 덩치에 눌린 것이 아니라 힘으로 채우지 못한 허허로운 공간에서 밀알이 된 저 부처님의 미소 같은 얼굴들 꼭 근엄한 것만이 유용한 것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어머님의 둥근 젖무덤이 사람의 빛깔을 만들었듯 저 우유빛 잔돌들의 포근함이 경내를 감싸고 있는 것 이제야 깨닫는다 오랜 세월 계곡을 굴러 갈고 다듬은 저 잔돌들 침묵의 돌덩이보다 아름답다 - [박명용 시 들여다보기](2005년)
*. 대둔사 : ‘대흥사’의 옛 이름. 현재 두륜산을 예전엔 ‘대둔산’이라 불렀고, 거기 딸린 절도 대둔사라 하다가 대흥사로 이름이 바뀜
#. 박명용 시인(1940년 ~ 2008년) : 충북 영동 출신으로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대전의 대표시인으로 활동하며 대전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6년 별세
<함께 나누기>
5년 전 중남미 여행 중에 페루 소재 ‘삭사이와만’에 오른 적 있습니다. 그곳은 잉카제국 수도인 ‘쿠스코’에서 조금 떨어진 곳입니다. 잉카인들의 뛰어난 재능 가운데 하나가 돌을 떡가루 반죽 주무르듯이 다듬는다는 점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마추픽추에서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지만 삭사이와만에서 보다 더 두드러집니다. 정말 돌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저는 그때 엄청난 크기의 돌을 정교하게 쌓아놓은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 돌 사이사이 끼워 넣은 작은 돌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큰돌로 중심을 잡고 차곡차곡 쌓아올린다고 한들 그 사이사이에 끼어 큰돌을 받쳐주는 작은 돌이 없었더라면 저 거대한 돌옹벽이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하고.
오늘 시에서도 시인의 눈에 그런 점이 띄었나 봅니다.
“잔돌이 정다운 건 / 해남 대둔사 성보박물관 앞뜰 / 석축을 보면 안다”
해남에 가면 대흥사에 들르는 일은 상식이지요. 대흥사엔 성보박물관이 있습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보다 덜 이름났지만) 거기서 화자는 석축을 이루는 큼직한 돌덩이 사이사이에 박힌 살결 고운 잔돌을 보고 감탄합니다.
“보아라 / 당당한 덩치에 눌린 것이 아니라 / 힘으로 채우지 못한 / 허허로운 공간에서 밀알이 된 / 저 부처님의 미소 같은 얼굴들”
언뜻 보면 그 잔돌들은 큰돌의 덩치에 눌러 힘 못 쓰고 쭈그러든 모습입니다만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잔돌의 가치가 들어옵니다. 비록 큰돌에 힘없이 찌그러져 눌림을 당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희생하는 밀알 같은 존재로 자리하고 있음을. 밀알이 자기만 생각하고 썩지 않으면 한 알의 밀알로 남지만 썩음으로써 많은 밀알을 맺게 만듭니다. 부처님의 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당신 한몸만 생각했으면 부귀영화를 누렸겠지만 당신을 희생함으로써 중생을 구원하셨기에.
“꼭 근엄한 것만이 유용한 것 /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보통 크고 빛나는 존재들만 우러러봅니다. 그들만이 세상에 쓸모 있다고 믿기도 하구요. 정말 그럴까요, 음지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존재들 때문에 사회가 돌아가고 있음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저 우유빛 잔돌들의 포근함이 / 경내를 감싸고 있는 것 / 이제야 깨닫는다”
그렇습니다. 어머님의 둥근 젖무덤이 사람의 빛깔을 만들었듯이 (젖을 먹고 컸듯이), 오랜 세월 계곡에서 갈고 다듬어져 어머니 가슴처럼 둥글게 만들어진 잔돌들, 그 잔돌들의 힘이 큰돌 못지않음을 이제사 압니다. 가만 생각해 봅니다. 석축을 볼 때 큰돌만 눈에 띄듯이, 역사서를 들추면 몇몇 위인들만 눈에 띕니다. 허나 우린 이제 압니다. 역사를 만들어온 주체는 몇몇 위인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서민들이었음을.
*. 첫째 사진은 대흥사 연리근 바로 옆 돌담이며, 둘째 사진은 삭사이와만 돌옹벽인데, 둘 다 큰돌 사이사이 끼어있는 잔돌로 하여 오랜 세월 버티고 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