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양희 시인(1942년생) : 부산 출신으로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던 해인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은 물론 제10회 [소월시문학상]도 받은 우리나라 대표 여성시인.
<함께 나누기>
천양희 시인,
대학 때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내 시인이 되었고, 같은 길을 걷는 남편(정현종 시인) 만나 아들 낳고, 행복만 가득하리라 여겼는데 갑작스런 남편의 이혼 통고와 아들과의 생이별, 그리고 이어진 부모님 사망.
어둠밖에 보이지 않던 이 시인에게 생의 의지를 되찾게 해 건 바로 시. 시를 쓰면서 다시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답니다. 최고 권위의 ‘소월시문학상’을 받아 교단으로 옮겨가 편한 생활할 수 있으련만 오직 시 쓰는 일만 천직으로 삼아 극도로 궁핍한 가운데서도 걸작을 뽑아냈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읽으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구두 닦는 사람', '창문 닦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들은 결국 '마음 닦는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자세가 어떻게 보면 참된 삶을 찾아 구도하는 성자와 같으니까요.
"구두 끝을 보면 /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손톱 아래가 새카맣습니다. 구두 닦느라 까만 구두약이 배어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이 표현에서 흰 것과 검은 것이 비유하는 의미를 찾아봅니다.
‘흰 것’은 흔히 말하는 잘난 사람들이 하는 빛나는 일, 법조인들 연예인들 재벌들이 하는 일을 비유한다면, ‘검은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빛은 나지 않으나 꼭 필요한 일, 구두닦이 창문닦이 청소부들이 하는 일을 비유합니다.
"창문 끝을 보면 /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앞에 나온 1연 2연 3연을 가만 보면, 각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비슷비슷합니다. 즉 1연의 구두닦이, 2연의 창문닦이, 3연의 청소부가 하는 일은 다릅니다. 모두 빛은 나지 않으나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다는 점에서.
“길 끝을 보면 /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남들 다 잘 때 새벽에 나와 길을 쓸고 있는 청소부,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빛도 나지 않아 누구에게 자랑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빛납니다.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닦는다’는 낱말을 보면 참 묘합니다. 더러운 걸 닦는다는 뜻도 담지만, 마음을 닦는다, 도를 닦는다(修道) 할 때도 쓰니까요. 그러니까 닦는다는 말은 몸도 닦고 마음도 닦고 주변 환경도 깨끗이 한다는 뜻을 담은 아주 소중한 시어입니다.
“성자가 된 청소부는 /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한때 많은 이들을 감동케 한 <성자가 된 청소부>, '침묵의 성자'로 알려진 인도의 영적 스승 바바하리다스가 작은 칠판에 글로 써서 전한 일곱 편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를 엮은 책.
그렇습니다. 성자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행한 사람은 다 성자입니다. 구두닦이도 청소부도 소방대원도 교사도 회사원도 맡은 바 일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해온 사람은 다 성자입니다.
문득 셰익스피어에 얽힌 일화가 생각납니다.
영국의 대문화 셰익스피어가 강연회를 마치고 한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그를 알아본 종업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때 한 청소부가 쓸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졌습니다. 셰익스피어가 까닭을 묻자,
“선생님은 그렇게나 유명하신데 저는 겨우 선생님의 발자국이나 닦는 처지라 화가 났습니다.”
그 말에 셰익스피어가 답했습니다.
“아닐세 젊은이, 내가 하는 일은 펜으로 우주의 일부분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자네는 그 빗자루로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보전하는 걸세.”
오늘 주변에서 이미 성자가 된 사람, 성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 성자가 될 사람을 보십시오. 그 사람 때문에 세상은 살맛 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