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이 좁은 대신 물살이 세다 보니 계곡이 푹 파여 깊은 냇물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지픈내’라 이름 붙여진 마을 뒷산에 딱따구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거기엔 좀 다른 어린 딱따구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린 딱따구리는 궁금증을 못 참아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이면 묻고 또 물었습니다. 늘 말끝에 “왜요?” “왜요?”란 말이 입에 붙어 "왜요"란 별명이 붙을 만큼 말입니다.
처음에 엄마 아빠도 너무 대견했습니다. 다른 애들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자기 자식만이 궁금증을 못 참아 묻고 또 물으니까요. 헌데 그러나 시간이 가도 하도 묻고 또 묻고 하기에 나중에는 지쳐
“먹이 잡는 일이나 신경 써!”
“그 따위 쓸데없는 것 좀 묻지 마!” 했습니다.
이웃 어른들도 처음엔 조그만 애가 묻는 게 기특하여 대답을 잘해주었는데, 자꾸만 물어대니 나중에 못마땅해했고, 어떤 땐 “이 녀석아, 왜 이 딴걸 자꾸 물어?” 하며 꿀밤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 '왜요'가 나타나면 일부러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도 했습니다.
'왜요'는 그래도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묻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었지요. 하지만 어른들에게서 돌아오는 건 꾸지람과 꿀밤과 심지어 욕뿐이었습니다. 부모님과 어른들의 반응이 싸늘해질수록 '왜요'는 점점 말이 없어졌습니다.
이웃에 천 년이 가까워오는 팽나무가 살고 있었습니다. 팽나무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어느 날 팽나무가 말을 건넸습니다.
“넌 왜 요즘 입을 열지 않지?”
'왜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들 저를 모자란 애라고 놀리잖아요.”
“아니다, 너는 모자란 애가 아니란다.”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든 '왜요'가,
“네? 제가 모자란 애가 아니라구요?”
“그래. 오히려 묻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 어른들이야말로 모자란 치들이지.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얼마 없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남이 묻는 걸 두려워한단다. 그러니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내게 물어봐. 이곳에선 내가 가장 나이가 많으니까 남들이 모르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
“정말요?”
'왜요'는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팽나무에게 쉼 없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실 '왜요'가 던지는 질문은 별게 아니었어요.
"하늘에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 건가요?"
"나뭇잎은 왜 떨어지는 걸까요?"
"바람이 불면 왜 나뭇잎들은 소리를 낼까요?"
"개미들은 왜 쉬지 않고 일하지요?"
"왜 꽃은 늘 그대로 있지 않고 시들지요?"
남들에겐 별로 궁금할 것도 아니건만 '왜요'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해댔어요. 그때마다 팽나무는 친절하게 답해주었어요. 대신에 팽나무는 한 가지 제안을 했지요.
“내가 네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너는 내 몸에 붙어 있는 벌레를 하나씩 잡아먹어야 한단다.”
그날부터 '왜요'는 질문을 했고, 그 대신 팽나무에 기생하는 벌레들을 하나씩 잡아먹었어요. 남들에게는 둘이 늘 쓸데없는 얘기만 늘어놓고 노는 모양새였지만 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요'는 먹이가 부족하지 않아 굶주릴 염려가 없었고, 팽나무는 팽나무대로 벌레가 줄어드니까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모든 걸 쓰러뜨릴 만큼 세찬 바람이었습니다. '왜요'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지만 그래도 큰 바위 아래로 몸을 숨긴 터라 위험하진 않았습니다.
다음날 바람이 가라앉자마자 '왜요'는 부리나케 팽나무에게로 가보았습니다. 역시 걱정한 대로였습니다. 가지 하나가 툭 부러져 있지 않습니까. '왜요'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팽나무를 보았습니다. 팽나무의 얼굴에 어젯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할아버지, 팔에서 피가 나요. 얼마나 힘드세요?"
"그래 좀 아프구나.... 너는... 괜찮니?"
"네 저는 괜찮아요. 바람은 참 나빠요. 가만히 있는 우리를 괴롭히고..."
팽나무는 아픔을 참으며 살포시 미소를 띠며,
"아니 그렇지 않단다. 바람은 나쁘지 않단다. 가끔씩 세게 불어 우리와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기에 우린 넘어지지 않으려고 뿌리에 힘을 주지. 뿌리에 힘을 주니 뿌리가 튼튼해지고. 그래서 큰비가 와 물살이 세차게 흘러도 이겨낼 수 있단다"
"아, 그럼 바람이 나쁜 일만 하는 게 아니군요. 전 또 그런 줄 모르고..."
"우린 대체로 눈에 보이는 걸로 모든 걸 판단하려 든단다. 사실 들여다보면 다 의미 있는 일인데도... 전에 네가 꽃이 떨어지는 걸 보고 슬프다고 했지. 왜 아름다운 꽃을 항상 그대로 두지 않느냐고. 헌데 늘 꽃이 그대로 있다고 치자. 우리는 아름답다고 할까. 없어졌을 때야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거야.
또 전에 내가 살 날이 얼마 없다고 했을 때 너는 늙어 병들어 죽는 게 싫다고 했지. 나도 죽는 건 싫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자리는 잠깐 내가 빌려 쓸 뿐이라는 이치를 알면 마음이 편안해. 만약 내가 그 지리를 계속 채우고 있다면 내 자식들은 어디서 살아야 할까?"
"그래도 저는 할아버지와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안 계시면 물어볼 데가 없잖아요"
"아니야, 이제 너도 묻기도 해야겠지만 주변에 사는 이들에게도 가르쳐줘야지, 묻는 애가 있다면 말이야. 묻고 묻고 또 묻는 것보다 더 좋은 습관은 없다고 나는 생각해. 아무리 물어도 쉬 해결할 수 없을 때도 말이야. 물음은 해답을 얻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물어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어.
그냥 보고 아는 천재는 사실 많지 않단다. 그런 천재 몇이 만들어낸 것보다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이 묻고 또 물어 만들어낸 진리가 훨씬 더 많단다. 그러니 이 말만은 명심해 둬. 교만한 자만이 묻지 않는단다. 진실로 지혜로운 이는 묻고 또 묻지. 그걸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렴."
오늘도 ‘지픈내 마을’ 뒷산에는 딱따구리가 나무에다 입을 맞추며 ‘딱딱딱’ 하는 소리가 춤 들려옵니다. 그 소리는 딱따구리가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나무들과 주고받는 아름다운 대화입니다.
*. 팽나무 사진은 한반도 식물자원 연구소 홈에서 퍼왔는데,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천연기념물 제494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