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갇혀 늘 바깥세상을 동경하던 ‘맴매’라 이름 붙은 염소가 주인이 문을 닫지 않는 틈을 타 탈출합니다.
맴매는 혼자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친구도 없이 홀로 지내게 되었지만 너무너무 신이 났습니다. 배가 고프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으면 되고, 자고 싶으면 위험을 줄 짐승이 올라오지 못할 언덕배기 비탈진 바위틈에 누우면 그만입니다.
하루하루 자유를 만끽하며 살던 맴매가 하루는 비가 오고 난 뒤 산꼭대기로부터 아래로 이어진 구름다리 모양의 무지개를 보고는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 다리를 건너가면 어디가 나오며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너무 멀고 높은 곳에 놓여 있어 그냥 본 것으로 만족하자 속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고픈 욕심 또한 그에 못지않았습니다. 포기와 도전의 갈등 속에 맴매는 뒤의 것을 선택합니다. 지금 오르지 않으면 다음 무지개 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맴매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발톱이 길어 보입니다. 산길 오르는데 긴 발톱은 방해가 될 뿐입니다. 바위에 발톱을 알맞게 간 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뿔을 보려 합니다. 그러나 뿔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도 뿔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그림자를 통해 확인합니다. 뿔 역시 자칫 나뭇가지에 부딪치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을 다 점검한 뒤 맴매는 산꼭대기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발을 옮기고 얼마 안 가 이내 동백나무숲이 맴매를 반깁니다.
“동백나무야 안녕, 난 무지개다리를 찾으러 산꼭대기에 오르려는데 얼마쯤이면 되는지 알고 있니?”
“여기서 얼마 안 돼. 조금만 가면 돼.”
아직 조금밖에 오지 않아 그럴 리 없을 텐데 하면서도 동백나무의 말을 믿고 맴매는 올라갑니다.
동백나무숲은 길지는 않으나 자갈돌이 많아 오르기가 여간 아닙니다. 그래도 아직 얼마 오지 않아 힘이 남아서 올라가니 팽나무숲이 앞을 막아섭니다. 맴매는 이번에 팽나무에게 묻습니다.
“팽나무야 안녕, 난 무지개다리를 찾으러 산꼭대기에 오르려는데 얼마쯤이면 되는지 알고 있니?”
“여기서 얼마 안 돼. 조금만 가면 돼.”
동백나무와 같은 대답에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맴매는 또 발길을 옮깁니다.
이제 제법 숨이 찹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온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아직까진 ‘이 정도야 …’입니다. 팽나무숲이 끝나자 저 앞에 떡갈나무숲이 보입니다. 맴매는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떡갈나무야 안녕, 난 무지개다리를 찾으러 산꼭대기에 오르려는데 얼마쯤이면 되는지 알고 있니?”
“여기서 얼마 안 돼. 조금만 가면 돼.”
떡갈나무도 동백나무, 팽나무와 같은 대답을 합니다. 맴매는 속으론 ‘이 녀석들이 모두 같은 말 하기로 약속을 했나.’고 투덜대면서 다시 올라갑니다.
점점 숨이 가빠옵니다. 절로 ‘헥헥’ 하는 신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보고 싶은 마음이 무거운 다리를 이끕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산철쭉군이 막아섭니다.
“산철쭉아 안녕, 난 무지개다리를 찾으러 산꼭대기에 오르려는데 얼마쯤이면 되는지 알고 있니?” 하고는 산철쭉이 대답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얼마 안 돼 조금만 가면 돼.’ 하는 말은 제발 말아줘.”
그러자 산철쭉의 눈이 똥그래지며 말합니다.
“너 어찌 알았어. 정말 여기서 얼마 안 돼. 아주 조금만 가면 돼.”
맴매는 어이없었지만,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 없어 다시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눈잣나무가 막아섭니다.
“눈잣나무야 안녕, 산꼭대기는 아직 많이 멀었니?”
“산꼭대기는 왜?”
“얼마 전에 본 무지개다리가 산꼭대기에서부터 뻗어 있어서 그걸 보러 가는 길이야.”
“그래 너는 아래 살다 보니 이 산에 있는 걸 보았구나. 나는 여기서 평생을 살았지만 이 산에서는 본 적이 없고 저 산 너머에 놓여 있던 건 본 적 있지.”
맴매는 다시 다른 산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푹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꼭대기에 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 이 산 꼭대기는 아직도 많이 멀어?”
“아니 바로 위야.”
“너도 거짓말하는구나.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 나무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다들 ‘조금만 더 가면 돼.’ 하고 대답했어. 그런 말에 속아 한참 올라왔다만 이젠 정말 못 올라가겠어. 너 지나면 또 다른 나무가 막아서겠지?”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우리 나무들은 높이에 따라 사는 종류가 다르거든. 동백나무는 여기 와선 살지 못해. 동백나무는 제가 사는 곳까지가 끝인 줄 알고 있을 수밖에. 나는 이 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살지만 맨 꼭대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해. 가보지 못했으니까.”
맨 꼭대기에 올라보지 않고는 거기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눈잣나무 말을 이해는 하지만 이제 온몸이 힘이 쭉 빠진 상태입니다. 더 올라가 본들 뭘 하나는 생각이 파고듭니다. ‘이제 내려가자. 할 만큼 했잖아. 그까짓 무지개다리 못 보면 어때’ 하다가, 아닙니다. 그까짓 무지개다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여태까지 올라온 보람이 전혀 없습니다.
맴매가 억지로 몸을 일으킵니다. 팔다리 마디마디가 다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도 고지가 바로 저긴데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 짜냅니다. 고개를 들 힘이 없어 나뭇가지를 붙잡으며 발만 보고 무의식적으로 내디딥니다. 아, 그때 잡히는 나무가 없어 무심코 고개를 드니 정상입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맴매의 앞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무지개다리만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맴매는 이 산과 저 산으로 걸쳐 있는 무지개다리를 보면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건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습니다. 맴매의 마음속 무지개다리는 이쪽저쪽으로 걸쳐 있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