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물방개, 하늘로 날아오르다


저는 물방개입니다. 물방개라 하니 호수나 개울에 사는 걸로 아실까 봐 미리 말하는데 저는 물에 살지 않고 게임의 도구로 쓰이다 보니 물통에 담긴 채 살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뽑기 놀이’는 다 아실 겁니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차이가 있는 놀이가 ‘물방개 놀이’입니다. 세숫대야 두 배 크기의 둥근 함석으로 된 구조물 안에 칸칸이 갈라놓은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의 가장자리에는 갖가지 상품이 놓여 있습니다. 캐러멜도 있고, 초콜릿도 있고, 껌도 있고, 풍선도 … 기타 등등 다 있습니다. 또 구조물의 한가운데에는 저를 떨어뜨리게 돼 있는 구멍이 있지요.

손님들은 조그마한 주걱에 저를 담아 그 구멍에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저는 자유롭게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칸막이 안에 들어갑니다. 제가 들어간 방에 놓인 상품을 손님들이 갖고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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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 주인은 양산어른이라 불리는 할아버지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지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두 분이서 삽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당연하지요. 일이 끝나면 할아버지가 양철 구조물을 손수레에 싣고 집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공원으로 나오니까요.

할아버지네 생활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네는 행복해 보입니다. 한 번도 언성을 높이는 걸 보지 했으니까요. 물론 저도 아주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먹이를 주진 않으나 끼니를 굶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함석 구조물 안에서 제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다닐 수 있었구요.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놀이도 즐거웠습니다. 제 손님은 주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이 칸 저 칸에 들어갈 적마다 ‘아’ 하는 신음과 함께 안타깝다는 듯이 몸을 뒤틀거나, ‘야호’ 하며 기쁨의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안타까워할 때는 저 역시 안타깝고, 아이들이 환호를 지를 때는 저 역시 환호를 지르고 싶을 때가 한두 번 아닙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큰 병이 든 것이지요. 할머니의 병 구환을 위하여 할아버지가 집에 늘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저를, 아니 함석 구조물과 그것을 실어 나르던 손수레를 팔아야 했습니다. 저는 덤으로 넘어갔구요.


바뀐 주인은 김 씨라고 불리는 젊은 아저씨입니다. 아저씨에게로 간 뒤 얼마 동안은 전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제 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살 때처럼 제가 가고 싶은 칸막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비싼 상품과 값싼 상품이 고루 나가게 되지요. 하지만 아저씨는 그게 못마땅했나 봅니다. 어느 날 아저씨가 제 오른쪽 더듬이 한 조각을 가위로 잘랐습니다. 무지하게 아파 기절할 뻔했지요.


그러나 아픔보다 더한 건 더듬이에 손을 대면 방향감각을 잃게 된다는 점이지요. 전에는 제가 오른쪽에 한 번 가면 다음엔 왼쪽에 한 번 가곤 했는데 더듬이를 잘린 뒤로는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데 몸은 왼쪽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왼쪽엔 싼 상품들만 있었고요.

싼 상품만 자꾸 걸린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손님들이 뜸해지자 아저씨가 이번엔 왼쪽 더듬이도 일부 잘랐습니다. 방향 감각이 떨어지다 보니 오른쪽도 갔다가 왼쪽도 갔다가 하니까 다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손님들이 늘어나자 또 아저씨는 더듬이를 잘랐습니다. 다시 한쪽으로만 가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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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는 아저씨에게 오른쪽 왼쪽 더듬이가 조금씩 잘라져 나갔습니다. 아프기도 하지만 저는 제대로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쪽으로 가려면 저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가려면 이쪽으로 갑니다. 아니 이쪽저쪽 다 모르겠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잘리면 정말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날 밤 결심했습니다. 물에 살지만 제겐 날개가 있습니다. 날 필요가 거의 없어 쓰지 않을 뿐이지요. 하지만 필요할 때는 사용하게 돼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요. 저는 날개를 폈습니다.


하도 안 쓰다 보니 잘 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폈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저는 이제 물에 사는 물방개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날방개입니다. 더듬이 잃은 물방개로 사느니 차라리 고향을 잃더라도 날방개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잘린 더듬이는 다시 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얼마 뒤이면 하늘도 물도 땅도 분간 못하는 그런 방개가 될까 두렵습니다.


*. 커버 사진은 중앙일보(2021.04.19)에 실린 '[권혁재 핸드폰사진관]물속의 청소부 물방개'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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