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골마을에 사는 100년 된 감나무는 오늘도 볼이 부었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자기 가슴 부근에 나 있는 작은 구멍으로 들어와 집을 지은 박새 두 마리 때문입니다. 녀석들은 오늘도 들어와 속을 갉아댑니다.
감나무는 몸에 난 구멍이 자꾸만 넓어지고, 장차는 그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픕니다. 자연히 자기 몸을 갉아대는 박새들이 미울 뿐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녀석들에게 알리려고 약한 바람에도 일부러 온몸을 세차게 흔들어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나뭇가지가 휘어져 부러질 정도로 흔들어도 박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몸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요. 분명히 두 마리만 들어와 있는데…. 두 마리가 내는 소리는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낮은 소리였는데…. 낯선 소리, 두 마리보다 가늘지만 끊임없이 재잘대는 소리인 듯합니다.
감나무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히 나가고 들어온 건 두 마리뿐인데, 그리고 그 두 마리가 내는 소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다른 소리가 나다니… .
처음 감나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여겼습니다. 아니 두 마리가 어디 몸이 아프거나 울대가 고장 났거나 아니면 사이가 나빠져 싸우는 소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가끔씩 한 마리가 무슨 일인지 밖에 나가고 난 뒤에도 재잘대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옵니다.
감나무는 자기 몰래 또 어떤 녀석들이 들어와 있는지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뱃속에서 나는 소리라 그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습니다. 궁금증에 불을 지를 양인지 재잘거리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옵니다.
전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 오후엔 가끔씩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러나 녀석들의 재잘거림으로 하여 이제는 잘 수 없습니다. 가만 들으면 몹시 활기찬 소리, 살아 있는 소리라 그리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건만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듭니다. 박자가 어긋나고 음정도 불안해선지 마음마저 이상합니다.
감나무는 절망합니다. 박새 때문에 가슴의 구멍이 커지고, 박새 때문에 시끄러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박새 때문에 삶의 평화가 깨진다고 여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이제 정말 죽는구나.’하고 속앓이를 하던 어느 늦은 봄날, 갑자기 가슴 한 부근이 울렁울렁합니다. 곧이어 큰 소리 작은 소리가 뒤섞인 소란이 전해지면서, 어느 한순간 속에서 뭔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입니다.
하도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어리둥절해하다가 고개를 드니 박새가 한 마리 두 마리. 바로 큰 놈 두 마리…. 아 그런데 이어서 그보다 좀 작은, 그러나 빛깔이 더 뚜렷한 녀석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모두 여섯 마리가 뱃속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제사 감나무는 자기 몸 안이 시끄러웠던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새끼들 때문이라는 걸요.
박새가 떠나고 난 뒤부터 감나무는 아주 편해졌습니다. 더 이상 구멍이 커지지 않을 게고, 다시는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며, 평화를 깨뜨릴 어떤 것도 이제는 없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개미, 진드기, 지렁이, 심지어 지네도 드나들지만 그들은 박새처럼 속을 쪼아대지도, 떠들지도 않고 조용히 드나듭니다. 아 물론 개미가 드나들 때는 속이 좀 간지럽고, 지렁이나 지네가 드나들 때는 끈적끈적한 이상한 느낌이 있지만 그거야 박새들이 준 행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흘러가면서 이상하게 속이 거북하고, 몸이 나른해지며, 어떤 땐 가시로 속을 할퀴는 듯한 아픔이 전해집니다. 그래도 감나무는 전에 박새가 있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다만 개미나 진드기나 지렁이나 지네조차 오지 못하도록 구멍이 완전히 메워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입니다. 감나무의 간절한 바람을 하늘이 알았는지 어디서 날아온 널찍한 떡갈나무 잎사귀 몇 장이 구멍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온 자잘한 나무 잎사귀와 풀잎들로 하여 구멍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비로소 감나무의 꿈은 이뤄졌습니다. 오로지 고요의 세계 속에서만 살게 되었으니까요.
구멍이 막히고 난 뒤 처음 한 동안은 너무 좋습니다. 시끄러움도, 메스꺼움도, 간지러움도, 끈적끈적함도 없습니다. 감나무는 그제사 마음을 놓습니다. 이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면 자식들이 태어나 또 다른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멍이 완전히 막히자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배어 나오는 게 아닙니까. 게다가 속은 또 얼마나 쓰리고 괴로운지요. 문득 자신의 나이가 생각납니다. 아흔이 지난 지가 십 년이 되었으니까 그러면 백 살…?
갑자기 감나무는 슬픕니다. 아직 뿌리가 튼튼한데, 아직 더 할 일이 남았는데, 아직 먼저 내보낸 자식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는데, 아직 더 나아가야 할 꿈이 저만치 있는데….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병 때문에 모두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이렇게 죽어갔구나….’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게다가 속은 점점 더 썩어가는지 군데군데 쥐어짜는 아픔이 찾아오고요.
감나무는 포기했습니다. 삶의 기운은 한겨울 산골마을의 볕처럼 점점 짧아져 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새 두 마리가 다시 날아 들어왔습니다. 구멍이 다 메워졌을 텐데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박새는 오자마자 또 속을 쪼아댑니다. 응당 또 아플 거라 여겨 미리 찡그리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아프기는커녕 시원한 느낌입니다.
쪼아대면 쪼아댈수록 더 시원한 느낌입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전보다 더 사정없이 쪼아대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만있을 때가 더 쓰라립니다. 박새가 쪼아대는 게 더 시원하다니?
그제사 감나무는 박새가 들어와 자기 속을 뜯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 썩어가는 곳을 어루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아프게 한 녀석들을 잡아먹고, 썩어가는 부위를 쪼아낸다는 사실을요. 삶의 평화는 홀로 있을 때 오는 게 아니라 함께 할 때 오는 거라는 걸요.
이제 감나무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다시 들려올 박새 새끼들의 재잘거림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