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있는 숯불고기 식당에서 일하는 '행주' 이야깁니다.
행주는 하루는커녕 한 시간, 아니 단 십 분도 쉴 틈이 없습니다. 잠시 쉬려고 하면 식탁에 놓이고, 그때부터 온갖 더러운 걸 닦아야 합니다. 카멜레온은 필요에 따라 자기의 색을 여러 번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행주는 자기의 의지와 아무 관계없이 카멜레온보다 더 많은 색 변화를 합니다.
반찬 국물을 닦을 때만 해도 그릇에서 떨어진 국물의 빛깔에 따라 변하지요. 또 양념 발린 채 남겨진 고기가 놓였던 자리를 한 번 문지르는 순간 희디 흰 얼굴이 순식간에 뻘겋게 변합니다.
뿐일까요, 너무 타서 먹지 않고 버려진 고기들은 또 어떻고요. 순식간에 흰둥이를 검둥이로 만듭니다. 빛깔만 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밥풀이 으깨져 식탁에 눌어붙은 거는 몇 번이나 빡빡 문질러야 하고.
흰 부분이 한 점 보이지 않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행주는 짤순이 속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선 돌고 또 돌고, 그리고 다시 또 돕니다. 어떤 다람쥐도 이보다 더 빨리 쳇바퀴를 돌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돕니다.
게다가 돌아가면서 짬짬이 옆구리에 박히는 어퍼컷이나 훅도 얻어맞아야 합니다. 찡그릴 틈도 비명 지를 틈도 없습니다. 얼마나 순식간에 와 박히는지…. 온몸을 쥐어짤 때는 ‘이제 난 정말 죽었다.’고 여기다가 짤순이에서 나와 선반에 진열되는 그 순간쯤에야 살았음을 느끼지요. 그러다가 다시 불려 나가고, 닦고, 돌고, 쥐어 짜이고.
선반에 있으며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정말 살맛이 안 날 지경을 넘어 미칠 지경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죽고 싶습니다. 맨 처음 목화씨가 땅에 심어져 자라 면화가 된 뒤 실면을 거쳐 실이 뽑아져서 어떤 건 면섬유로 좋은 옷감이 되고, 자기는 행주로 되었지만 순백의 빛깔만은 잃지 않았는데 …
더더욱 힘든 건 더러운 식탁을 닦기만이 아니라 모두들 자기를 더럽다고 해서입니다. 이렇게 억울할 수 없습니다. 원래 자신이 더러운 게 아니라 식탁에 묻은 얼룩이 더러운 게 아닙니까. 자신은 단지 그 더러운 걸 닦아내 깨끗하게 해주다 보니 더러워진 것이고.
울화가 치미는 걸 참지 못하여 온몸이 울렁울렁하는 그때 행주의 눈에 자기 아래 놓여 있는 대걸레가 들어옵니다. 얼마나 피곤한지 바로 서지도 못하고 비스듬히 누운 듯 기댄 듯 있는 대걸레를 보자 그만 지금까지의 감정이 물밀 듯이 사라집니다.
대걸레! 참 그렇습니다. 자기와 도저히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래도 매끌매끌한 식탁 위로 오지만 걸레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칠거칠한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또 긁히며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너덜너덜합니다.
또 자신은 때가 묻으면 짤순이 속에 들어가 정신없이 돌지언정 깨끗하게 탈바꿈합니다. 그런데 걸레는 그렇지 않습니다. 짤순이 같은 기계는커녕 주인이 그냥 발로 콱콱 있는 힘을 다하여 짓밟습니다. 탈수 과정도 그렇습니다. 그냥 밖에 되는 대로 세워둡니다.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차이고 밟히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주인아저씨에게 말 안 듣는 자식이라도 있다면 큰일입니다. 왜냐구요? 대걸레를 힘껏 밟아 가운데를 뚝 부러뜨린 뒤 그걸로 아들을 후려치기도 하니까요. 어떤 주인도 행주를 찢어 아이에게 던지지를 않습니다.
더욱이 화장실에 가 청소할 때는 아예 말문을 닫아야 할 지경입니다. 변기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나온 오줌을 닦아야 함은 물론 가끔은 변기 속을 닦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속의 누렇게 빛은 오줌일 수도 있지만 어떤 땐 똥이기도 하니, 정말 자신의 처지는 걸레의 처지에 비하면 호강에 겹습니다.
행주는 걸레의 마음속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입니다. 자기가 겪는 고통의 몇 배나 더 겪고 있는데, 얼마나 속이 썩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말을 건넵니다.
“너 정말… 너는 정말 안 됐다.”
그 말에 숙였던 고개를 드는 걸레의 모습이 몹시도 힘겹게 느껴집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찢어지고 헝클어진 네 모습도 그렇고, 또 얼마나 힘들었으면 곧게 서지도 못하고 비스듬히 서 있는 걸 보니 그래…”
“고마워 그리 생각해주니. 그런데 힘들어서 비스듬히 기대어 섰는 게 아니야. 난 바로 서 있으면 넘어지기 때문이야. 물도 빠지고 잘 마를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이 자세야.”
“그 말이 옳다고 해도 … 솔직히 지금 나는 냄새가 나 못 견디겠거든.”
“미안해. 오전에 화장실 들어갔다 나와서 그래.”
“어쩐지 더러운 냄새가 나더니…” 하며 행주가 코를 움켜잡더니,
“내가 너 같으면 그리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그 말에 걸레가 잠시 침묵합니다. 그러더니,
“너 보기엔 어떤지 몰라도… 난 지금 행복해. 정말 행복해.”
“행복, 뭔 소리야? 얘가 워낙 더러운 곳에서 일하다 보니 정신이 살짝 어떻게 된 거 아니니?”
“그래 그렇게도 보일 수 있어.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너무 힘들었어. 네가 한 번씩 신세한탄을 할 때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쌀 녀석 같으니!’ 하며 속으로 욕하기도 했지. 정말 죽을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죽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 뭐야….”
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어차피 내 삶이 평생 식당이나 화장실 바닥을 닦으며 살다 갈 팔자라면, 그걸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게 천직이라면 차라리 즐겨보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
“참 어이없다. 네가 얼마나 힘들까 하여 변호해주려 했는데…. 뭐 즐겨보자? 그게 즐길 수 있는 일이니?”
“처음엔 나도 그랬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니 별의별 게 다 행복하더라.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나는 좁고 더러운 식당 바닥을 청소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의 한 부분을 깨끗이 하고 있다. 나의 조그만 희생으로 누군가의 더러운 마음과 젖은 마음을 닦아줄 수만 있다면, 다들 걸레질이 필요한 곳이 되기를 원하는 이 세태에 나만이라도 걸레가 되어 줄 수만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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