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편 : 고영민 시인의 '공손한 손'
@. 오늘은 고영민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공손한 손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공손한 손](2009년)
#. 고영민 시인(1968년생) : 충남 서산 출신으로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친근한 언어로 정통 서정시 문법에 충실한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포항 ‘포스코교육재단’에 근무
<함께 나누기>
우리말에서 ‘짓다’의 쓰임이 참 의미 깊습니다.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습니다. 그러니까 옷(衣), 밥(食), 집(住), 이 세 말에 공통된 동사가 ‘짓다’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의식주'는 우리네 삶의 기둥입니다.
왜 우리 선조들은 옷을 만들다, 밥을 만들다, 집을 만들다 대신 ‘짓다’를 썼을까요? (지금은 '옷을 만들다'로 쓰나 원래는 '옷을 짓다'였음) 그럼 ‘만들다’와 ‘짓다’ 이 둘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한눈에도 '만들다'보단 '짓다'에 공경의 뜻이 담겼음이 느껴집니다.
자 ‘밥을 짓다’를 한 번 볼까요? 분명 식사의 범주에 반찬도 들어가는데 반찬을 '만든다'라고 하지 '짓는다' 하진 않습니다. 즉 반찬은 밥에 딸린 부수적인 존재밖에 안 됩니다. 그럼 왜 이렇게 밥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았을까요? 당연히 옛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밥이었기 때문이지요.
만나면 첫인사가 다른 말보다 "밥 묵었습니까?"였죠. 물론 밥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를 확인함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한 안부 인사로. 그리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란 말도 그리 해석하면 됩니다. 밥을 먹어야 무슨 일이든 해나갈 수 있다고. 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오늘 시는 한 번 읽으면 머릿속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다만 짧으니 두 번 아니 세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합니다. 밥에 대한 경외감이 듬뿍 든 시를 읽고 나면 ‘밥맛이 없다’란 말하기가 괜히 부끄러워집니다.
화자는 추운 겨울날 점심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설명은 없지만 고급레스토랑이 아닌 서민들이 드나드는 식당입니다. 밥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습니다.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일단 손님들은 추운 겨울날 한데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추위에 떨다 들어온 손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밥이 나오자 먼저 숟가락 들기 전에 꽁꽁 언 손을 녹이려 뜨뜻한 밥뚜껑 위에 올려놓습니다. 마치 의식을 치르는 신자들처럼.
여기서 단순히 언 손을 녹이려 함이 아니라 엄동설한에도 굶어 죽지 않게 나오는 밥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습니다. 그러니 제목이 「공손한 손」이 되었지요. 시에서 쓰인 ‘공손히’란 시어에 오래 눈길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시어 때문에 시가 살아났습니다. 말하자면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실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고사처럼 말입니다.
밥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집니다. 밥이 곧 삶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밥알 한 톨 허투루 남기지 않았습니다. 혹 두레밥상을 아십니까?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큰 밥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씰한 나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밥상부터 위에 놓이는 음식은 다 둥글었습니다. 둥근 밥상, 둥근 밥그릇, 둥근 반찬그릇... 바로 가족 모두가 둥근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 둥근 얘기 나누며 한 식구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시가 밥상에 앉을 때마다 별생각 없이 숟가락 드는 제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와 같습니다. 다시 한번 모내기, 벼, 나락, 추수로 이어지는 농부의 손길에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며 읽습니다.
*. 위 그림은 [한국글쓰기코칭협회] 진순희 협회장의 작품이라는데 시를 참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