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쥐는 어떻게 나뉘었을까


늘밭마을에 아빠 쥐와 아들 4형제가 살고 있습니다. 쥐 4형제는 각각 나름의 특징을 가졌습니다.


첫째는 몸놀림이 아주 날렵하고, 둘째는 눈이 좋지 않은 대신 귀가 발달했습니다. 셋째는 주둥이가 다른 형제들보다 길고 뾰족하며, 넷째는 코와 눈이 아주 발달했습니다.

아빠 쥐는 홀로 열심히 일해서 아들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양식을 얻어와 그 덕에 4형제는 아주 편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빠 쥐가 차츰 나이 들면서 힘에 부치고, 잔병이 군데군데 생기면서 다섯 식구 양식을 마련하기가 힘에 부쳤습니다.


그래서 아빠 쥐는 자식들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습니다.

“이제 너희들도 웬만큼 다 컸으니 나가서 너희 먹을 양식은 각자가 마련해 오라.”고.

그러나 아들들은 무슨 소리냐는 듯 들은 체 만 체 방바닥에 배만 붙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화가 난 아빠 쥐가 “말 안 들으면 집에서 내쫓는다.”고 엄포를 놓아도 그만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를 낳은 사람이 먹을 걸 책임져야지 왜 우리가 양식을 책임져야 하죠?” 하며 당당하게 말할 때는 억장이 다 무너집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 괘씸한 마음에 양식을 숨겨놓기도 했습니다만 일은 죽어라 하기 싫어하는 녀석들이 숨겨놓은 양식 하나만은 귀신처럼 찾아냅니다.

아빠 쥐는 나중에 자기가 죽게 되면 자식들이 모두 일하는 법을 몰라 양식을 마련치 못해 굶어 죽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네 아들은 변함없이 아빠 쥐가 모아놓은 얼마 남지 않은 양식만 축낼 뿐 일하러 나갈 생각을 도통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 쥐는 근심에 쌓였습니다.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간 자식들도 굶어 죽겠지만 자손마저 끊기게 될까 염려가 되었으니까요. 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빠 쥐가 자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네 아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온갖 핑계를 대며 회의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꾀를 냈습니다. 언젠가 몰래 훔쳐와 아껴놓은 아들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멸치와 새우 대가리로 말입니다.



네 아들은 아빠가 차려준 새우 몇 개가 섞인 멸치 버무리에 들떠 그 속에 숨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댔습니다. 호박씨와 말린 토마토를 몰래 넣은 덕분인지 이윽고 첫째, 둘째, 셋째, 그리고 마지막 아들까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 쥐는 네 아들을 묶어 각각 자루에 넣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음식을 빼앗겨 제대로 먹지 못한 아빠 쥐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자식들을 썩은 오동나무를 잘라 만든 수레로 옮겨 싣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넷을 다 싣고는 수레를 몰았습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이르러 산뽕나무 밑에 첫째를 내려놓고는 첫째가 깨어나기 전에 재빨리 수레를 다시 몰았습니다.

그리고 숲을 빠져나오기 바로 전에 커다란 동굴이 보이자 둘째를 내려놓았습니다. 눈이 나쁜 둘째는 먹이를 혼자 얻을 수 없기에 계속 데리고 있고 싶었지만 역시 자기가 죽고 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외부의 침입이 비교적 적다고 여겨진 동굴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잠에 빠진 셋째와 넷째를 싣고 아빠 쥐는 다시 수레를 몰았습니다. 이윽고 한 뼘 정도의 키 작은 풀만 자라는 초원에 이르렀을 즈음 막 눈을 뜨는 셋째에게 놀라 바로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셋째가 자신의 계획을 알아차리기 전에 따라오지 못하도록 재빨리 자리에 올라 내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루 속에서 잠이 깨 소리를 지르는 넷째는 자루 끝만 풀어준 채 그대로 사람이 사는 마을 한구석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달아났습니다.



숲 속에 버려진 첫째는 아빠의 배려로 몸을 숨기기 좋은 곳에서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눈 비비고 보니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전혀 낯선 곳입니다. 게다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시무시합니다.

으르렁대는 소리, 크아앙 하며 내지르는 소리, 뭔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 츳츳츳 하는 기분 나쁜 소리 등. 모든 소리의 주인공이 당장이라도 자기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은 분위기라 재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동굴 속에 버려진 둘째도 시간이 지나자 깨어났습니다. 동굴 속은 어두웠지만 원래 눈이 나빴던지라 그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워낙 조용하다 보니 다른 곳에선 들을 수 없었던 작은 벌레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지만 바닥에는 물기가 많아 걷기 힘들었습니다.


잔디밭에 버려진 셋째가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나지막한 풀들만 자라는 곳이라 몸을 숨길 데가 하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소스라치며 주변을 둘러보자 다행히 위험 요소는 없어 보였습니다.

자기보다 더 큰 짐승이라면 금방 눈에 띄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늘로 눈을 돌리는 순간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 같은 여러 매들이 세찬 날갯짓을 하며 내려다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셋째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사는 도시의 어두운 구석에 버려진 넷째도 자루를 헤치고 나왔습니다.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어두침침한 구멍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땅에는 덩치 큰 짐승도, 하늘에는 사나운 매도 보이지 않아 적이 마음을 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저기서… 무슨 소린지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놓칠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을 돌리자 저만치서 횃불을 켜놓은 듯이 번쩍이는 눈동자가 보였습니다. 아빠가 누누이 일러준 고양이였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꽉 끼쳤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늘로 올라갈 때가 다 됐다고 생각한 아빠 쥐는 죽기 전에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버렸던 아들들을 찾아보는 것이지요.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첫째를 버린 숲 속이었습니다. 그곳에 이르러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큰아들을 닮은 녀석이 보이지 않아 기어코 너구리의 먹이가 되었구나 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며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뭔가 휙 지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은 분명히 자기 큰아들인데 꼬리가 훨씬 길어진 이상한 녀석이 웃으며 내려다보는 게 아닙니까. 더욱 녀석의 입에서 “아빠 반가워요.” 하는 인사에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을 차린 아빠 쥐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큰아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날렵한 몸놀림을 살려 나무를 타는 기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야 원래 재빨랐기에 어디 가든 제 혼자 몸은 꾸려 갈 수 있다고 여겼지만,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아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둘째를 찾아 동굴 근처에 이른 아빠 쥐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는 건 들짐승과 날짐승들뿐입니다. 둘째는커녕 비슷한 녀석도 전혀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그때 문득 당장의 위험을 피하려고 동굴 밖이 아니라 속에 넣어둔 게 생각났습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동굴 속은 어두컴컴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어깨 위에 뭔가 닿는 느낌이 있습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이제 죽었구나! 큰아들만 겨우 보고 가는구나.’ 하며 죽음의 공포에 빠지려는데 뭔가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친 게 아니라 몹시도 부드러운. 이어서 늘 애틋한 둘째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빠, 이렇게 절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둘째는 눈이 나쁜 대신 밝은 귀를 얻었고, 또한 축축한 땅에 살기 힘들어 날개까지 얻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음으로 셋째를 찾으러 풀밭에 이른 아빠 쥐는 진짜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급한 마음에 내려놓았는데 다시 보니 숨을 데가 하나 없는 나지막한 풀밭이지 않겠습니까. 가리는 게 하나 없으므로 살아 있다면 눈에 보여야 할 텐데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에는 매 떼만 빙빙 돌고 있을 뿐.


아들 잃은 슬픔에 울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땅 속에서 뭔가 튀어나오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생각도 못하는데, 튀어나온 녀석의 입에서 “아빠!”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이번에도 얼굴은 분명 셋째이건만 피부색이 완전히 달라졌고, 눈도 감겨 있었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듯한 모습에 땅에 퍼질고 앉아 대성통곡하자 셋째 아들은, "아빠 왜 울어? 난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데.”

알고 보니 셋째는 눈을 잃은 대신 땅 파는 기술을 가진 훌륭한 토목기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가 모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 사는 곳에 떨어뜨려 놓은 넷째를 찾아 나선 아빠는 도시로 들어서자마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너무 시끄럽고, 너무 지저분하고, 너무 복잡하여 아들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첫째와 둘째와 셋째의 경험으로 막내도 나름의 방식으로 살 길을 찾았으리라 여기며 부지런히 돌아다니다가 쓰레기통을 지나치는데 갑자기 통 위로 뭔가 솟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로 막내였습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왔는지 머리에는 콩나물 모자를 쓰고, 몸에는 돼지껍데기를 외투로 걸치고, 입에는 고추장을 립스틱처럼 잔뜩 묻힌 모습입니다. 비록 더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살은 가장 통통히 쪄 있어 먹을 것만큼은 가장 풍요한 듯싶었습니다.


결국 아빠가 자식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보느니 어려움에 부딪쳐 살길을 마련해보라는 뜻으로 마련한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네 아들 중 큰아들은 다람쥐로, 둘째 아들은 박쥐로, 셋째 아들은 두더지로, 넷째 아들은 집쥐로 잘들 살게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