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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80)

제280편 : 문태준 시인의 '산수유나무의 농사'

@. 오늘은 문태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산수유나무의 농사
문태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 [맨발](2004년)

*. 옥말려들다 : 안쪽으로 오그라져 말려들다.

#. 문태준 시인(1970년생) :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94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 37세의 나이로 ‘소월시문학상’을 받아 차세대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 [불교방송] PD로 '문태준의 생각'이란 프로그램을 운영




<함께 나누기>

어제와 그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완연한 봄을 보았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꽃이 매화인데, 홍매는 터지기 직전이고 청매도 다음 주면 다 피겠습니다. 매화에 이어 산수유꽃도 곧 피겠지요. 저는 3월 중하순이면 ‘광양 매화마을’ 들렀다가 ‘구례 산수유마을’로 나들이함을 한 해의 시작점으로 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시를 읽고 싶은 마음 들게 만드는 시구가 앞에 빨리 나오면 읽는 사람도 참 기분 좋지요. 그런 점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에 이어 나온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를 봅니다.
산수유나무에 핀 꽃이 만드는 그늘, 당연히 그늘이니 검은빛이라 하거나 그늘빛이라 해야 하는데 시인은 노란빛이라 합니다. 이 시구 읽으면서 독자는 머릿속에 노란 산수유꽃이 만들어내는 그늘을 상상합니다. 어쩌면 떨어진 노란 꽃잎을 연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산수유꽃밭에 들면 내 마음도 어린아이처럼 노랗게 물듭니다. 잠시나마 세상이 만든 온갖 추한 빛을 다 지우면서.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옥말려든다’는 시어 하나. '안쪽으로 오그라져 말려들다'는 뜻이지만 여기 쓰임이 얼마나 적절한지... 세상이 말라갈수록 사람 마음을 오그라지게 만듭니다. 양심이 가출하고, 배려심이 길 잃고, 의무와 책임감은 재가 되어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산수유꽃보다 더 이쁜 꽃은 많지만 꽃이 드리우는 노란 그늘은 오직 산수유꽃이라야 만듭니다. 그 곁에 서면 잔칫집에 온 것 같이 들뜨게 되고, 얼굴을 온통 환하게 물들이는 꽃들의 입김에 푹 젖게 되니까요.
여기서 ‘그늘’을 산수유나무가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결과물을 비유한다고 보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 편안함을 제공하는 공간이며,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로서의 의미까지 지닙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꽃이 공중(하늘)에 피어 있지만 산수유꽃이 만들어내는 그늘은 땅에서 더 넓어진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나무에 핀 꽃보다 그게 만들어내는 그늘이 더 넓다는 뜻입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당연하지요. 사물보다는 그림자가 더 넓으니까요.
허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봅니다. 노란 꽃이 떨어지면 빨간 열매가 달립니다. 산수유 빨간 열매는 한방에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예전 해열제 대신 썼던 약이고, 하체를 튼튼하게 하고 강음(强陰), 신정(腎精)과 신기(腎氣) 보강에도 쓰는 등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습니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이 시행에서도 ‘사람이 산수유나무를 기른다’라고 해야 할 것을 산수유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이 성장하여 또 다른 생명을 키워가는 되살이 과정이기도 하며 상생과 나눔을 뜻합니다.
이를 보면 산수유나무는 다른 생명의 휴식을 허락하는 미덕을 발휘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타인을 위한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고작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속만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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