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편 : 김선우 시인의 '변검'
@. 오늘은 김선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변검
김선우
우리가 남이니?
자기 그림자를 뜯어내려는 소년을 끌어안으며 어른이 운다.
그럼 당신이 나예요? 남이지.
난폭하게 잡아 뜯는 소년의 그림자에서 핏물이 떨어질 것 같다.
우리가 어떻게 남이니?
어른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웃기시네. 나랑 같은 걸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척하기는.
어른의 울음소리가 소년의 차가운 웃음에 덮인다.
그런 얘기가 아니잖니?
담장 아래 흰개미 굴이 가득했다. 담은 곧 무너질 텐데.
남인데 남 아니라고 우기면 맘 편해요? 그럼 그러시든가.
소년은 소년대로 사무친 것이 있고
어른은 어른대로 소년이 사무쳤다.
사무쳐서 봄이 왔고
사무쳐서 꽃이 피었다.
사무쳐 벌어진 것만 꽃이었다.
얼룩 같은
얼굴들이었다.
- [녹턴](2016년)
#. 김선우 시인(1970년생) : 강릉 출신으로 1996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시인으로 소설가로 활동.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소리를 곧게 내면서 가끔 매스컴에 오르내림.
(혹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남성 아닌 여성 시인임을 미리 밝힙니다)
<함께 나누기>
‘우리가 남이가’는 예전부터 흔히 영남 지역 사람의 단결력을 사투리로 잘 드러낸 구호인데 건배사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우리가!” 하고 선창하면 다른 사람이 “남이가!” 하듯이. 그러다 1992년 소위 ‘초원복집 사건’ 뒤 정치적 용어로 변질되었고.
오늘 시에서 ‘우리가 남이니?’는 위의 두 가지와 전혀 관련 없습니다. 소년과 어른의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은 부모와 자식 사이임이 유추됩니다. 헌데 두 사람의 대사를 솜솜히 뜯어보면 묘합니다. 소년은 ‘우리가 남이다’라고 주장하고 어른은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고 설득하려 드니까요.
참 제목 「변검」은 중국의 전통극 중 하나로, 배우가 얼굴에 쓴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마술과 비슷한 공연입니다. 제목과 시 내용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데 함에도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면서 읽어봄도 시 이해에 도움 되겠지요.
시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남이니? / 자기 그림자를 뜯어내려는 소년을 끌어안으며 어른이 운다 / 그럼 당신이 나예요? 남이지”
참 이상하지요, 부모와 자식 중에 한쪽은 ‘우리는 남이 아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우리는 남이다’라고 하니까요. 여기 ‘자기 그림자’에서 ‘자기’는 어른도 되고 소년도 되는데 어른으로 봅니다. 그러면 소년은 자기에게서 어른의 그림자를 뜯어내려는 행위가 됩니다.
이즈음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소년(자식)은 어른(부모)의 그림자를 뜯어내려고 할까요? 소년이 어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알게 되면서 거부한다는 식으로 봐도 되고,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일종의 반항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얼마나 부모를 벗어나려 했는지는 ‘난폭하게 잡아 뜯는 소년의 그림자에서 핏물이 떨어질 것 같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무척 미워하면서 절대로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 크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웃기시네. 나랑 같은 걸 느끼는 것도 아니면서 척하기는 / 어른의 울음소리가 소년의 차가운 웃음에 덮인다”
전에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회사 부장이 신입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세대 노래 배우고 유머도 배워 써먹었더니 무척 좋아하였는데... 어느 날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볼일 보는데 밖에서 신입 둘이 주고받는 말, "김 부장, 그치 우리 비위 맞추느라 애쓰는 게 참 불쌍해 보이더라"
“담장 아래 흰개미 굴이 가득했다. 담은 곧 무너질 텐데 / 남인데 남 아니라고 우기면 맘 편해요? 그럼 그러시든가”
담은 진짜 담이 아니라 여태 소년을 지탱해 온 정신적 구조물입니다. 그러니 소년은 ‘나는 지금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느냐’는 빈정거림입니다. 어쩌면 집집마다 그럴지 모르지요. 부모는 자식이 자기들 뜻대로 크기를 바라지만, 자식이 걸어가는 길은 부모의 바람과 다를 수 있음을. 그래서 소년은 어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자신에게서 어른의 그림자를 뜯어냄으로써.
“소년은 소년대로 사무친 것이 있고 / 어른은 어른대로 소년이 사무쳤다”
소년이 가려는 길과 어른이 바라는 길은 서로 어긋납니다. 그러니 소년과 어른은 각자 서로에게 사무치는 점이 많습니다. 우리도 그랬지요.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들이 내 말 좀 들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사무쳐서 봄이 왔고 / 사무쳐서 꽃이 피었다 / 사무쳐 벌어진 것만 꽃이었다”
이 시의 건강함은 소년의 행위를 불손한 행위로만 보지 않고 인생의 꽃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즉 ‘얼룩 같은 얼굴들’이 지나고 나니 서로의 얼굴에 남듯이.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했건만 이제는 두 사람 다 닮았습니다.
이제 제목이 ‘변검’이 되었는지 한 번 볼까요. 연기자가 얼굴에 쓴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듯이 소년이 어른 되는 과정에서 수십 번 얼굴을 바꾸게 됩니다. 우리도 다 그렇게 소년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처음 그대로의 모습대로 되지 않고 커가면서 수차례 바뀌어 현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