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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34)

제334편 : 최두석 시인의 '낡은 집'

@. 오늘은 최두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낡은 집
최두석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다리를 저는 오리 한 마리 유난히 허둥대며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 사는 슬레이트 흙담집, 겨울 *해어름의 집안엔 아무도 없고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여전하며 벽에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서 오셔서 콩깍지로 군불을 피우고 동생은 면에 있는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워한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 광주 간 차비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한참 어두워서야 귀가해 장남의 절을 받고, 가을에 이웃의 텃밭에 나갔다 *팔매질 당한 다리병신 오리를 잡는다.
- [망초꽃밭](1991년)

*. 두엄자리 : 두엄(거름)을 쌓아 모으는 자리.
*. 해어름 : ‘해거름’의 사투리(경기, 충남)
*. 냉돌(冷堗) : 불기 없는 찬 온돌방. ‘냉방’
*. 팔매질 : ‘돌팔매질’의 준말

#. 최두석 시인(1956년생) : 전남 담양 출신으로 1980년 [심상]을 통해 등단. 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신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중씰한 나이에 이른 이라면 해설 없이도 다 이해하실 내용입니다. 도시에 살던 화자가 가난하고 낡은 고향 집에 오랜만에 돌아와 거기서 느끼는 소박하고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리는 시입니다.

원시는 행이 죽 이어진 산문시인데 가만 읽어보면 마침표(.)가 다섯 개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다섯 문장으로 쪼개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화자인 ‘나’는 타지에 살다가 오랜만의 귀향을 낯설어하면서도 가족의 따뜻한 환영에 소박한 기쁨을 느끼고 내용의 시입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귀향’이라는 말이 왜 화자에게는 매우 어설플까요? 아마도 도시 삶에 바빠 자주 들르지 않아서 그런 듯. 부모님 계시고 누이도 함께 사는 고향집이건만 낯설 만큼 찾지 않음을 강조해주는 증거로 다리를 다친 오리가 나옵니다. 이 다리병신 오리는 나중에 화자를 위해 부모님께서 보신음식을 만들어주는 재료가 되고.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


오랜만에 들른 고향집은 풍요로움 대신 오히려 낯설고 적막합니다. 슬레이트 흙담집, 겨울, 해거름, 아무도 없음, 냉돌 상태의 방바닥. 여기서 고향집에 대한 서술을 보면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인 화자가 하고 있음에도 자기 가족이 아닌 마치 다른 사람의 가족을 남에게 보고하는 듯이 담담한 어조로 읊습니다.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가난한 고향집 묘사는 여기 와서도 이어집니다. ‘여덟 자 방구석’은 5.76㎡이니 채 2평이 안 됩니다. 헌데 이 시행에 오면 고구마 뒤주의 정겨움과 ‘벽에 메주가 매달려 박치기한다’라는 익살스러운 묘사를 통해 낯섦과 적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 ~~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워한다.”


세 번째 문장에서 지펴진 따스함이 넷째 문장에 오면 더욱 안온합니다. 비록 어머니는 허리가 굽었지만 오랜만에 들른 아들을 위해 군불을 지핍니다. 거기에 중학생인 동생도 학교에서 돌아와 화자를 반깁니다. 텅 빈 집에 어머니와 여동생이 등장함으로써 생기 도는 시골집이 됩니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 다리병신 오리를 잡는다.”


이 문장에서도 아버지는 고작 차비 정도 버는 일당을 받아 넉넉하지 않음을 보여주지만 아들을 위해 다리 부러진 오리를 잡습니다. 비록 가난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네 식구 모두가 모였습니다. 그보다 더 따뜻한 정이 흐르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는 화자가 오랜만에 고향 집에 돌아왔는데 고향 집은 여전히 낡고 가난한 모습이지만 어머니, 동생, 아버지가 환대하며, ‘나’를 위해 오리를 잡아 함께 식사하는 모습에서 애잔하면서도 따뜻함과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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