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35)

제335편 : 최영철 시인의 '쑥국 - 아내에게'

@. 오늘은 최영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쑥국 - 아내에게
최영철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 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 [찔러본다](2010년)

#. 최영철 시인(1956년생) : 경남 창녕 출신으로,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소설가인 아내 조명숙과 함께 김해 생림면 예술인촌 '도요림'에 살며 전업시인으로 생활.


(도다리쑥국)



<함께 나누기>

오늘 시를 읽으면서 문득 ‘쑥국새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쑥국새는 '산비둘기'의 전라도 사투리인데, 봄날 쑥 새순이 날 무렵 “지지-쑥꾹!” 하고 구슬피 울기 때문에 붙여졌답니다.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시골에서 봄날 먹을 게 없던 시절, 시어머니 무서워 쑥국 한 그릇 못 먹고 굶어 죽은 며느리 영혼이 쑥국새가 되어 봄이면 그렇게 구슬피 운다고 합니다.

오늘 시는 '사부가(思婦歌)'입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도 같은 ‘사부가’이지만 그땐 '婦' 대신 '父'가 붙습니다. 아마 오늘 시를 읽고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 우러나오지 않을 대찬(?) 남편 있을까요. 아 저도 물론 말은 안 하지만 늘 미안함 느끼며 삽니다.
시인 소개에서 전업시인이라 했는데 시만 써 생계를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아주 유명한 시인이라면 몰라도 다들 어렵습니다. 문학지망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신춘문예를 통과했건만 먹고살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시로 표현했을지도.
시인의 아내도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본업은 소설가이건만 남편의 시를 비롯해 ‘아내를 위한 노래’를 모은 시집 [하늘 연인]을 펴냈습니다. 어머니나 사랑하는 임을 노래한 시는 많아도 아내를 노래한 시는 그리 많지 않은데 시인의 아내가 여러 시인의 시를 모아 펴냈으니...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 다음 생애 딱 한 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 온갖 감언이설로 /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첫 부분에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다음 생애에서 그대를 다시 만나 (그대는 남편이 되고) 나는 그대의 아내가 되었으면 한다고. 반찬 투정했던 잘못 그대로 그대 입맛에 맞도록 간을 하고, 그대 비위 맞추며,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바가지도 긁었음 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왜 그러는지, 남자들은 참말로 왜 그러는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이건 물론 제 이야기입니다. 아이 둘 키우느라 몸 망가지고 온 기력 다 빼앗겼건만 그냥 애들이야 저절로 컸지 하며 시치미 뗀 잘못을 반성합니다.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더운 쑥국의 의미는 다음 시구에 나옵니다.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한다’에서. 아내는 힘듦과 괴로움과 아픔을 몰라주는 남편 때문에 얼마나 속 쓰렸을까요. 쑥국엔 아내의 쓰린 속을 풀어주는 효능도 있나 봅니다.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마음에만 넣어두고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뱉지 않으면 사랑도 아니다는 말이겠지요. 왜 저는 그랬을까요? 부끄러워서, 별난 자존심에, 워낙 내성적이라서, 이제 살 만큼 살아서 다 알 거라고?
저는 아내가 다그치면 ‘나는 가벼운 사랑보다 묵직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합니다만 정말 왜 그럴까요? 왜 그랬을까요?
앞에서 쑥국새 전설을 들먹인 까닭을 이제 아실 겁니다. 전설에선 며느리이지만 아내로 바꿔도 됩니다. 지금이야 쑥국 못 먹는 아내는 없겠지만 아내의 속을 풀어주는 쑥국 같은 남자가 되었으면 하고. 아 저는, 저는 많이 부족한 놈입니다.

오늘 시는 이래저래 아내에게 죄지은 남편이 읽으면 잠시 고개 숙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산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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