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41)

제341편 : 강현덕 시조시인의 '집배원 오기수 씨'

@. 오늘은 강현덕 시조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집배원 오기수 씨
강현덕

그가 발견됐다 일주일 만이었다
눈보라 칼날에 심장이 베인 채로
바닷가 거친 지름길
깊은 벼랑 아래서

눈에 묻힌 외딴집 단 한 통의 ‘농민신문’
이 때문에 이 길을…… 내일에나 가세요
아직도 여덟 통 있어요
오늘 안에 배달해야죠

행낭을 툭툭 치며 흰 눈썹이 웃었다
끌고 나선 자전거가 그때 벌써 휘청했다
들길은 새하얀 밤중
새 한 마리 없었다

첫사랑 밤편지가 후회되는 안면우체국 옆
날 위해 내달았을 눈보라 길 그를 본다
햇살도 못내 미안해
비석 자리를 쓴다
- [너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어서](2022년)

#. 강현덕 시인(1960년생) : 경남 창원 출신으로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2019년 제38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으며, <역류> 동인으로 열심히 시조를 씀
(참, 이름만으로 오해할까 봐 여성 시인임을 미리 밝힘)




<함께 나누기>

이 시조를 이해하려면 아래 기사를 먼저 읽어보셔야 합니다.
“1980년 악천후를 무릅쓰고 우체국에서 10km 떨어진 마을까지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폭설 속에서 집배원 오기수 씨는 순직하였다. 만국우편연합은 그의 숭고한 사명감을 높이 기려 세계 160개국에 이를 알렸다. 그의 추모비는 지식경제부 공무원교육원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고 오기수 집배원 순직터 비’라는 이름으로 안면우체국 옆에 구조물을 세워놓았다.”

이 작품이 시조임은 아시겠지요. 각 연의 3~4행만 2행으로 만들었는데 둘을 붙여 한 행으로 하면 일반 시조 율격인 3장6구가 되니까요.
‘바닷가 거친 지름길 / 깊은 벼랑 아래서’
'아직도 여덟 통 있어요 / 오늘 안에 배달해야죠'
‘들길은 새하얀 밤중 / 새 한 마리 없었다’
‘햇살도 못내 미안해 / 비석 자리를 쓴다’

‘오기수 씨’에 대한 기사 내용을 아주 예전에 들은 적 있는데 잊고 지내다 이 시조 덕에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시조로 들어갑니다.

“눈에 묻힌 외딴집 단 한 통의 ‘농민신문’ / 이 때문에 이 길을…… 내일에나 가세요 / 아직도 여덟 통 있어요 / 오늘 안에 배달해야죠”

이 시행은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대화체입니다. 아마도 면에 자리한 우체국에서 오기수 씨와 우편물 담당자 사이에 나누는 대화인 듯. 눈에 묻힌 외딴집에 갖다 줄 ‘농민신문’ 한 부. 이 신문은 오늘 아니라도 됩니다. 길 안 좋으면 며칠 뒤라도 됩니다. 급한 일 아니니까요.
그래서 담당자는 내일 눈이 좀 그치거나 녹으면 가라고 권합니다. 오기수 씨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외딴집에 사는 노인네의 유일한 취미가 농민신문 읽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자전거에 신문을 싣고 우체국을 나섭니다.

“행낭을 툭툭 치며 흰 눈썹이 웃었다 / 끌고 나선 자전거가 그때 벌써 휘청했다”

오기수 씨의 눈썹이 희다기보다는 눈길 속에 나서면서도 웃음 띈 모습을 강조하려는 표현인 듯합니다. 헌데 자전거를 끌고 나서자마자 휘청합니다. 그만큼 길이 좋지 않다는 뜻이지요. 이러면 가지 말아야 하는데 책임감 때문에...

“들길은 새하얀 밤중 / 새 한 마리 없었다”

밤길에 나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힘든 눈길을 헤치며 여덟 통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늦어져 밤이 되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이때라도 돌아갔으면 좋았으련만. 새 한 마리 없다는 말은 이미 새들도 늦은 밤이 되어 잠자리로 돌아갔다는 뜻이겠지요.

“첫사랑 밤편지가 후회되는 안면우체국 옆 / 날 위해 내달았을 눈보라 길 그를 본다”

어쩌면 젊었던 시절 화자가 보낸 첫사랑 편지도 어느 배달부의 손에 밤길을 갔을지 모릅니다. 내가 보낸 사랑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 배달부는 눈보라도 무시하고 길을 다녀야 했습니다. 편지 기다릴 사람을 위해.

“햇살도 못내 미안해 / 비석 자리를 쓴다”

‘햇살이 빗자루로 비석을 쓴다’는 표현, 참 반짝입니다. 이런 표현이 우리로 하여금 시를 읽게 만듭니다. 화자는 ‘고 오기수 집배원 순직터 비’ 앞에 섰습니다. 마침 그날따라 햇살이 쏟아져 비석을 쓰다듬는 듯하다는 표현이겠지요.

시인의 사명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잊고 있던,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을 새삼 일깨우는 역할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시조를 통하여 45년 전에 자기 책임을 다하려 애쓴 한 배달부의 삶을 되새기면서 책임감이 무엇인지 아는 시간을 갖습니다.



*. 첫째 사진은 눈길 속에서 우편물 배달하는 집배원 모습([경향신문] 2011. 1. 30)이며, 둘째는 집배원 오기수 씨 30주년 기념식 장면([서울신문] 2010. 12. 1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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