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42)

제342편 : 이대흠 시인의 '어떤 마음을 입으시겠습니까'


@. 오늘은 이대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어떤 마음을 입으시겠습니까
이대흠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서는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은 냄새가 납니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갈아입어야 합니다. 몇 달 동안 외로움을 입고 있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외로움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모든 생각은 소모됩니다. 낡거나 때가 묻습니다. 아침에 옷장에서 옷을 고르듯 오늘 입을 정서를 골라야 합니다. 속에는 아무래도 부드러운 호감이나 자존감을 걸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우울을 입어도 좋습니다만 날마다 입지는 마십시오. 슬픔을 신고 우는 남자는 구입한 슬픔에 만족하는 중입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오만의 속옷은 감추어도 드러납니다.
비굴의 외투는 몸을 옥죄어 숨통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다정의 외투를 껴입는 것도 좋습니다. 이따금은 명랑의 손수건도 나쁘지 않겠군요. 근엄의 넥타이를 매셨다면 넥타이의 무게에 무너지지는 마십시오. 정서는 껍질일 뿐입니다. 트럭을 입고 다닐 수는 없지요. 가벼운 기쁨이나 배려의 마음은 언제든 어울리지요.

당신이 마련한 기분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마음을 입으시겠습니까?
- [시와문화](2020년 여름호)

*. 쾌쾌한 : 표준어는 ‘쾨쾨한’으로, ‘퀴퀴한’의 작은말입니다.

#. 이대흠 시인(1967년생) :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94년 [창비]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1999년에는 [작가세계]에 소설가로 등단. 모 시인이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라고 극찬한 적 있으며, 대학 다닐 때 잠시 서울 산 일 말고는 줄곧 장흥에서 생활함.




<함께 나누기>

사람마다 옷을 입는 목적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고급 브랜드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저는? 그냥 입습니다. 결혼 후 가게 가서 제 손으로 옷을 산 적 없습니다. 그냥 아내가 사다 주면 입을 뿐. 단지 추위와 더위와 몸 가림용으로.

시로 들어갑니다.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서는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은 냄새가 납니다”

세상에!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선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은 냄새가 난다? 참 기발한 착상입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게 되면 고리타분해져 새롭게 변하려는 마음이 없어지니까요. 생각도 썩는가 봅니다.

“몇 달 동안 외로움을 입고 있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외로움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외로움에 절어 사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 왠지 슬픔의 얼룩이 보인다.’라고 한 표현은 본 듯한데 ‘외로움의 쾨쾨한 냄새’가 난다고? 누가 요즘 저를 만나면 맡을 냄새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사람 만남이 적다 보니 무슨 냄새든 날 겁니다. 군둥내가 나든...

“모든 생각은 소모됩니다. 낡거나 때가 묻습니다.”

앞 시행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한 생각에 오래 매달려 있으면 냄새가 나니까 새롭게 바꿔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요즘 꼰대란 말이 참 많이 쓰입니다. 꼰대는 단순히 나이 들었단 의미보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며 사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말이겠지요.

“우울을 입어도 좋습니다만 날마다 입지는 마십시오. 슬픔을 신고 우는 남자는 구입한 슬픔에 만족하는 중입니다”

화자는 우울함을 무조건 떨쳐내라고 하지 않습니다만 날마다 우울함은 피하라고 조언합니다. 슬픔에 쩐 사람은 계속 슬프니까요. 아침에 옷장에서 옷을 고르듯 오늘 펼칠 정서를 골라야 하는데 늘 같은 옷을 입지 않듯이 언제나 같은 정서로 살 수는 없겠지요.

“오만의 속옷은 감추어도 드러납니다. / 비굴의 외투는 몸을 옥죄어 숨통으로 파고들 것입니다”

오만함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남의 눈에 보입니다. 또 한 번 비굴하면 다음에 또 비굴한 짓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내가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상대는 내가 겸손한지 오만한지 이내 알아차립니다. 비굴함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따금은 명랑의 손수건도 나쁘지 않겠군요.”

앞에서 우울함만 장착해선 안 된다 했으니 가끔 명랑하게 하루를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울ㆍ오만ㆍ비굴 대신 기쁨이나 겸손이나 용감함도 시시때때로 보여줘야 하겠지요. 정서는 껍질일 뿐이니 진정한 참 생각을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당신이 마련한 기분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마음을 입으시겠습니까?”

옷에 대해 예민한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기분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저는 제 옷에 대한 느낌은 없으나 남의 옷을 보고 기분이 달라질 때가 있습디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망설이신 분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옷차림에 시간 좀 투자하시길.



*. 첫째 사진에선 비 오는 날엔 화사한 옷이 기분을 좋게 만들고([여성경제신문] 2017. 7. 11), 둘째는 SBS드라마 '기분 좋은 날' 스틸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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