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편 : 안주철 시인의 '다음 생에 할 일들'
@. 오늘은 안주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혀를 잘라버려야 해 저걸 저 저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안 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 [다음 생에 할 일들](2015년)
#. 안주철 시인(1975년생) :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2002년 [창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2015년에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을 펴낸 뒤 그 속에 하도 아내에 대한 글이 많이 ‘아내바보 시인’으로 불림.
<함께 나누기>
오늘 시는 평소 아내에게 죄짓고(?) 살아온 남편들이 읽으면 다들 쩌릿할 겁니다. 아내들은 눈시울 붉힐지 모르겠고. 저 같은 사람만 아내에게 죄짓고 사는 줄 알았는데 오늘 시를 보니 시인도 그랬군요. 아마 시인이라서 더더욱...
그리고 오늘 시는 따로 해설 없이도 쉽게 읽힐 겁니다. 아래 해설보다 시를 한 번 더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아내가 운다”
첫 시행부터 빠져들게 만듭니다. 우선 먼저 원인 제공자가 화자인 남편 때문이라면 우는 까닭이 궁금해질 터. 셋째 시행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에서 유추해 보면 아마도 돈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는 아내 따라 화자가 더 처량해져서 다시 우는 아내를 봅니다. 참 흔히 볼 수 없는 기막힌 장면입니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남자들은 참 단순하지요. 아내의 울음에는 돈 많이 벌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깃들었다고 봅니다만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겁니다. 다른 이유를 모르니까 아니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내는 더욱 서럽지만 계속 울면 진짜 남편이 돈 때문에 우는가 보다 여길까 봐 억지로 그치고 맙니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남편의 어리석음은 이어집니다. 집 한 채 없이 사는 가난함 때문이라고 여겨서 나온 말이겠지만 아내의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특히 ‘다음 생에’란 시어가. 이번 생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다음 생을 기대하게 만들다니. 아내는 참 답답하겠지요. 왜 자기가 우는지 몰라주니까요.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참 어이없습니다. 어이없으니까 아내가 피식 웃을 수밖에요. 뜬금없이 아프리카에 여행 가서 모래 한 줌 만져보자 하니까요. 어쩜 평소에 아내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는 ‘세렝게티 평원’으로 가보고 싶다는 말을 잠꼬대로 했을지 모릅니다. 그걸 기억해서 꺼낸 나름의 위트인지 모르지만.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시행은 아내가 남편에게 던지는 대사로 봅니다. (달리 봐도 됩니다) 자꾸 헛소리하는 걸 보니까 당신 오래 살지 못하겠다고. ‘이번 생’보다 ‘다음 생’을 기대하는 남편에게 항의하는 메시지이면서 이번 생에 당신이 내게 해준 게 부족하니까 더 오래 살다 가라는 투정도 되고.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의 말에 울컥하여 눈물을 감추려 내뱉는 말 ‘배고파’. 이때 남편은 아이가 됩니다. 이에 아내가 엄마 되어 밥을 차립니다. 그러자 아이가 된 나는 반찬 투정을 합니다.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나는 아이 대신 이번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합니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안 된다”
참 묘합니다. 나는 아내가 되기 힘든데, 아이는 아내로 쉽게 변신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요. 나는 어른이라 타산적인데 비하여 아이는 순수하니까 그럴까요. 아내의 마음을 제대로 읽으려면 타산성을 앞세우는 대신 순수함을 지녀야만 읽을 수 있다고 풀어봅니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남편은 너나없이 다 어리석다고 합니다. 무조건 자기 기준에 맞춰 생각하니까요. 아내는 다음 생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겐 다음 생보다 이번 생이 더 소중합니다. 다음 생에 돈을 많이 벌어 집을 한 채 아니 두 채 세 채 산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 전세 아니면 월세로 사는 현실이 쓰라린데. 그걸 모르는 남편이 밉지만 영원히 미워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남편이 다음 생을 얘기하는지 잘 알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아내가 남편과의 대화를 끝내려고 하면서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하는 말,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참 깔끔한 마무리입니다. 객쩍은 농담 끝내고 이제 삶의 터전으로 나서자는 다짐이면서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잘 안다는 뜻도 담았습니다.
시인은 이 표제시가 실린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맨 마지막 장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이 세상에 불행을 보태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오래된 희망은 모두 사라졌지만 새로 만들어야 할 희망은 남았겠지요.”
*. 첫째 사진은 동아일보(2020. 2. 15)에서 퍼왔고, 둘째는 김민경 화가의 ‘그저 사랑하겠다고’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