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종의 ‘1’을 살아내는 자.
생각이라는 감정이 펜촉을 적셔, 잉크에 적셔지는 날이 있다.
사명(使命)이라는 운명이 묻히지 않겠노라는 명(命)을 거역해 비가 흐르고 땅에 스며들 듯이 적셔지는 때가 있다.
'두서없음'은 흘러넘침이며,
'형식없음'은 그릇을 거부한 것이고,
산문이 시(詩)가 되고,
살아있는 감정은 영원한 잔향을 남기기 마련.
나는 누구인가,
현세에선 수없이 많은 호명으로 칭할 수 있다.
리더, 기획자, 마케터, 교육자, 창작자, 인플루언서, 칼럼니스트, 애늙은이, 고고한 척하는 철학을 좇는 자, 어느 날엔 그저 본능을 품은 수컷, 이도저도 아닌 날에는 학자를 빙자한 키보드 워리어.
그 외에선 수없이 많은 명을 따르는 자이기도 하다.
'질문'이라는 종교를 믿는 사내,
'사랑'이라는 불가능을 믿으려는 사내,
'인도'라는 사명을 품어보려는 사내,
이내 감정을 품어내어 이를 사는 사내,
이내 '대답'을 얻어내어 품어 내는 사내,
사내연애(ㅈㅅ)
내가 이해하기로는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고,
사랑을 체념하지 않고,
말을 곱씹고,
기억을 품고,
고통을 감내하고,
다정함을 죄책감처럼 껴안는 사람.
그런 인간이라는 종(種) 중에서 '1'에 해당하는 삥이.
사명은 타고난 운명은 아니나,
후천적으로 품게 된 명으로서
웬만하면 수행하려 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BIG 웃음을 얻고,
때로는 감각을 남기고,
때로는 관계를 얻고
결국에는 가이더의 명이었다.
아,
나를 반(半)했다지.
끝,
더 못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