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건강,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쓰려다 보니 어째 매번 두서없는 글의 완성입니다.
두서는 없고,
감정은 앞서며,
때문에 서술은 자꾸 흐트러져 있습니다.
다만,
리터치는 본질을 헤칠 수도 있어 리라이팅 없이 원형을 공개합니다.
Let's go.
어느 날,
어떤 글을 보았다.
「기분이 나쁘면 몸도 무너집니다.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치는 진짜 이유, 건강과 감정 사이의 연관성 ... (중략) ... 기분은 건강의 방향을 정하고 속도를 조절합니다.」
맞다,
공감했다.
기분은 건강의 시작이며,
건강을 더 좋아지게도, 나빠지게도 만든다.
TV 속 연기자들이 외치듯,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돌아보면,
내가 지금껏 쓴 22편의 브런치와 오늘 발행한 브런치북 1권까지 그 모든 글은 '철학'과 '진리'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은 '건강의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그만큼 진리는 늘 단순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본질, '사랑'.
신이 매일 노래하고,
성현들이 목놓아 외치며,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말하던 단 하나의 단어.
그 단어인 '사랑'을 해체하면,
철학이요,
과학이요,
기술이며,
학문이고,
결국 '건강'이라는 말에 닿는다.
그 건강이란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몸만은 아니다. 더욱이 깨끗한 정신만도 아니다.
당연하지만,
감정은 "좋다"와 "나쁘다"로 단순하게 재단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분법 속에서
사람들은 더 많은 고통을 품기도 한다지.
- 부처의 중도 사상에서 -
사랑, 연민, 명예, 배려, 우정 같은 것을 '좋은 것'으로만 여기고,
이별, 분노, 가난, 욕심, 우울 같은 것을 '나쁜 것'으로만 몰아세우는 순간,
감정은 스스로를 병들게 한다.
(Atta dipa viharatha, attasatana.)
- 『대반열반경』, 석가모니 부처
진정한 회복이란 '좋고 나쁨'의 분별에서 벗어나는 은둔일지 모른다.
(Pulchritudo est splendor veritatis.)
- 토마스 아퀴나스(Tommaso d'Aquino, 시칠리아 왕국, 1225~74년) -
때론 사과 속을 벗겨 보지 않아도,
껍질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빨간 껍질 위에서 노란 속살을 상상하며, 그 자체로 '진리의 반짝임'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의 원형을 품은 순간.
결국 위 세 명의 성현은 말한다.
향락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렇다고 고행에만 몰두하지도 말며, 그렇다고 중간을 살지도 말고, 모든 것을 느껴보며 살라는 말.
그래서 '웃음은 좋고 울음은 나쁘다'는 구분조차 우리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때문에 기분은 건강의 시작이며,
고단한 하루 속의 미소 한 번,
회색 도시 속의 에메랄드 한 방울,
무수한 비난 속의 따뜻한 손길 하나는 그 자체로 충분히 진리다.
참, 적당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