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 예쁘지?

감동을 팔지 않고, 전하는 기획인 ㄴㄴ, 사람인 %%

by 삥이

어때,

결과물 예쁘지?



현실은 숫자로 칠해져 있고,

이상은 감정이 씌워져 있으며,

그 사이 교차점은 내 눈앞의 광경으로 펼쳐져 있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면 내 스마트폰 속의 환경은 아래와 같다.


빨간색 알람으로 도배된 카카오톡.

초록색 알람으로 '읽으세요'라고 건네는 문자 메시지.

그리고 읽지 않을 경우 정확히 1시간 이후 걸려오는 수통의 전화.


일주일 안에 예정된 2건 이상의 클라이언트 미팅과 실무자들끼리의 회의. 회의. 회의를 빙자한 훈계, 훈계를 빙자한 책임 전가, 그리고 결국 묻는 "그래서 삥이야 어떻게 하까잉?".


저녁에도 관계 속에 놓여있다.


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웬만하면 나는 이 상황들 속에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반사되는 사람이어야 만족하는 편이다.


이 버릇이 때로는 감정의 과잉으로 이어지는 때가 있으나,

그 과잉을 겪어본 자는 어차피 극소수이다.


즉, 거의 없다.






나이를 먹어 간다.


크고 있을까?

가득해지고 있을까?

연륜은 묻어나는가?


외려

표독스러워지고 있는가?

욕망으로 점철된 내 표정이 보이는가?






나이를 먹어가며,


어릴 적,

'결'만 통해도 되었던 친구들은 어느덧 '격'도 통하는 지도 따지고 있고,


'손길'만 스쳐도 그 이를 향해 온몸으로 향했던 내 반응이 어느덧 '싫은 거 1개'만 포착되어도 온몸으로 거부를 하고 있으며,


'도와주세요'만 외쳐도 그분의 집에서 그분의 가족과 술 한 잔을 기울이던 내가 어느덧 "얼마 짜리 고객인데요?"라며 팀장에게 반문한다.



쓰고 보니 찌질해 보이지?

이걸 수시로 느끼는 나는 얼마나 창피하겠어.






나이를 먹고 보니,


사실 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를 댈 때 친구들은 여전히 "오늘 삥이 쉬는 날 이래 ㅋㅋ"라며 참이슬 몇 병을 사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더라.


그리고 다 좋은 만남들이기도 했다.

상처와 후회의 몫은 서로 다르게 가져가기도 하겠으나, 생각해 보면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감정 속에서 나온 한 송이의 가시마저 품을 수 없던 내 작은 그릇에 대한 반작용이 그들의 후회로 번졌을지도 모르지.


또 다 좋은 고객들이었다.

프로젝트의 경중에 관계없이, 중고 냉장고를 매입하던 내 첫 고객님부터 미디어에서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시는 내 마지막 고객님까지 너무나도 소중한 꿈을 품으신 멋진 분들이다. 그들 앞에서 나는 뭔가?



어제 내가 했던 말,

어제 내가 썼던 글,

어제 내가 내보낸 기획안,

어제 내가 송출한 콘텐츠,

어제 내가 쓰자고 한 계약서.

그걸 전부 '오늘'이라고 치환하면 '창피하다'라는 감정의 연산값이 나온다.


신기하지?

ChatGPT가 1초에 수천만 번의 연산을 통해 자연어 처리를 하여 우리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뭉치의 연속을 내뱉는 것처럼,


내가 GPT 마냥 1초에 수회의 주마등을 통해 "나 잘했을까?" 하는 설렘 혹은 두려움으로 연산이 되니 말이야.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오늘이 당신의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다." (윌리엄 제임스)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준다." (알베르 카뮈)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고통과 쾌락, 양극단을 초월하라." (석가모니 부처)

"아름다움은 반사된 진리의 빛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재앙은 복이 기대는 것이고, 복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노자)


내가 지금껏 브런치에서 작가로 선정된 후 호출한 성현(聖賢)들이다.


내가 '아는 척'아닌 '앎'으로 진정 그분들을 품었는지 가끔은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나다움'의 개성을 좇되,

그 개성이 네 피를 흘리게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또 그것을 내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때문에 오늘은 바보였지만,

"내일은 '덜 바보' 하련다"라는 쿨함을 내비칠 수 있다.


"나 정말 최선을 다했어",

외면과 방관 섞인 마침표보다는

"어때 우리 결과물 예쁘지",

동행이 광고인에게는 어울리는 멘션.

진짜 하고 싶으면 숨지 말고 그냥 끝까지 밀고 가는 거다. 함정없는 전진.



대한민국 광고계 거장 박웅현 님이 말한다.

"가장 오래 기억되는 방법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 감동이었는가.

그 물음은 늘 양분이 되어왔다는 것을 느낀 지는 오래전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물어봐야겠당.


"감동이어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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