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벤더를 몰랐지만, 당신은 민트를 물었다.

사랑은 큰 고백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by 삥이

<Joep Beving - Ab Ovo>





그녀는 오후 11시 즈음, 늘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하이힐 소리, 가죽가방의 무게, 서류봉투를 끌고 오는 왼손. 그 조용한 행진을 나는 매일 커피 트럭 너머에서 지켜봤다.


마치 일기예보도 없이 눈이 오는 날처럼.


그녀는 늘 단정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지만, 어깨에서 무게가 느껴졌고, 눈빛에서 매일을 버텨내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커피 트럭 주인이다.


낮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이면 이 트럭으로 돌아와 누군가의 하루 끝에 온기를 건넨다.


그녀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내게 가장 마지막으로 오는 손님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나의 하루'였다.


나는 이 장면을 자그마치 3년이나 지켜봐 왔다.






"따뜻한 거, 드릴까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만든, 라벤더향 라떼를 조심스레 건넸다.


그녀는 묻지 않았다. 왜 라벤더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당신이냐고.


그날부터, 그녀는 한 모금 더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하루 더 살아갈 이유를 한 모금 더 얻었다.





그녀는 출판사 에디터였다.


책을 다루는 사람이라 그런지, 말수는 적고 눈빛이 예리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산을 쓰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작게 시작했다.

하루는 라벤더, 또 하루는 캐모마일.


그녀가 남긴 컵의 무게, 입술 자국의 위치, 마신 양... 나는 말하지 않고 그녀를 배우는 법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진눈깨비처럼, 비 오는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우산을 안 들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준비해 둔 하얀 우산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조심스러운 시선이었다.


"오늘은 민트 가능할까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온몸에 전율이 돋았고, 나도 모르는 새 목소리는 떨렸고, 심장 한 구석이 주먹으로 꽉 쥐어지는 듯한 통증 아래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사람, 내가 건넨 커피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하루를 배워가고 있었을 때,

그녀는 내가 가까워지려는 그 모든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가 다시 오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마음을 조금 배웠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를 잘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고, 그 하루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예뻤기 때문이다.


그녀의 한 모금은,

나에게는 하루 전체였다.




나는 라벤더를 몰랐지만, 당신은 민트를 물었다.





사랑은 큰 고백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작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작은 용기를 품고, 꾸준한 노력 아래에 꽃을 피워댄다.



작 중 도경은 '길 위에 선자'를 의미한다.

그는 낮에는 편의점 알바, 밤에는 커피트럭 사장이 되어 바쁜 하루를 살지만 누군가를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용기를 건네는 법'을 꾸준히 진행해 왔던 청년이다.


윤설은 '눈처럼 조용한 자'를 의미한다.

그녀는 대형 출판사의 에디터로서, 세련된 외모와 멋진 직업으로 장식되었고, 수많은 남정네 사이에서 머릿결을 찰랑이는 존재이지만 하루의 끝은 '용기를 알아채는 법'으로 도경을 만나왔다.



위 둘의 결말은 공개되지 않는다.

필자가 더 쓸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따뜻한 거 드릴까요?"라는 도경의 물음으로 시작된 대화가 "오늘은 민트 가능할까요?"라는 윤설의 대답으로 돌아오는 내러티브 자체는 '큰 고백으로 시작되지 않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점철된 예쁜 사랑'을 이미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 중 도경은 윤설을 3년간 짝사랑해 왔고,

작 중 윤설은 도경이 건넨 따뜻한 커피의 변화를 3년이나 지켜봐 왔다.


이 둘의 마지막은 뻔하겠지. Love Ending이겠지.





그래,

사랑은 큰 고백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작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작은 용기를 품고, 꾸준한 노력 아래에 꽃을 피워댄다.


사랑은 결국, 이해를 위한 언어다.


윤설은 민트를 원했고,

도경은 처음엔 라벤더밖에 몰랐지만,

이제는 윤설의 민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라벤더를 몰랐지만, 당신은 민트를 물었다.


'모른다'는 말의 서툶, '물었다'는 말의 다정함.



커피.jpg




작가의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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