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키키 재밌당
어떤 도시는,
기온이 아니라 사람의 온도로 계절을 판단하게 한다.
매일 30도를 넘나들어도
내가 서늘할 때고 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마음이 자꾸 흔들릴 때가 있더라지.
어딘가 익숙한 도시,
그러나 그 안의 나는 낯설기만 하다.
그 도시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을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나는 그 안에서
'나로 살아지는 방식'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박혜경 - 레몬트리(Lemon Tree)>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은 특별하진 않았다.
문구점에서 300원 정도에
5장 들어있는 색종이로 접었던
미니카들이 내 장난감이었다.
그것으로 약 300여 개의
미니카를 만들고,
100개씩 나누어서,
고구려 vs 백제 vs 신라라는
나만의 작은 삼국시대를 만들어
군사 놀이를 즐기고는 했다.
그 장난감들이 놀랍게도
지금까지 내 방에 고이 놓여있다.
누군가 보기에는
번쩍번쩍한 로봇도 아니고,
그럴싸한 레고 블록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미니카들을 가지고 놀면서,
"이건 광개토대왕",
"이건 조금 크니까 근초고왕",
"이건 날렵하게 생겼으니 김유신",
이라면서 몰입을 했다지.
지금 와서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입에 미소가 번진다.
다시 그 미니카들을 줘도
방 한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곳에
내 장난감들이 있었다.
도파민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시간은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실 그곳에,
내 존재가 내 시간을 소유하던 시간이 있었다.
어느 순간은,
내 어깨 위에 장난감이 올라탔다.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아마 저 사람들의 신분은 조금
다양했을 것이다.
.. 가 아니라,
정확히, 다양했다.
장난감처럼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은 레고 블록처럼
밟으면 온몸에 전기가 '지릿~' 하고
통하듯이 통증이 오래갔다.
아프진 않았는데,
레고한테 "너 왜 거기 있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지 못한 날들의 쌓임이
나도 모르는 채 누적되고 있었나 보다.
어깨 위,
인간의 팔이 가장 닿기 어려운 그 부위.
해부학적으로는
견갑골(肩胛骨)과 승모근(僧帽筋) 사이의 틈.
감정적으로는
남들이 얹어놓은 것들을 내가 스스로 치우지 못하는 자리.
재미있어서 두고 있었는데,
차마 그 장난감을 만질 틈이 없었다.
견갑골과,
승모근 사이에
놓여 있었나 보다.
사실은 그랬다.
어깨 위에 올라둔 장난감마저도
내 몸에 무게를 가하지 못했었다지.
왜냐고?
장난감이잖아.
얼마나 즐거워.
내 거잖아.
외려 사랑스럽기 마련이지.
사랑했으니까,
잃어버려 아팠던 것이다.
나 자신을.
그러니까 나는
잃어버려 아팠다고 생각했다.
한 번 잃은 밸런스는,
되찾으려면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은 절대 서둘러선 안 되며
다시, 천천히, 스며들 듯
내 안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다시 내게로.
그러기에는,
회사가 너무 바빴고,
약속이 계속 있었고,
업무는 늘 라이브였으며,
옷장은 계절을 건너뛰었고,
휴대폰 갤러리에는 '나'보다 업무용 이미지가 쌓였고,
그러니까,
나는 그냥 시간이 없었던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때문에,
한 번 잃은 밸런스를,
그 밸런스를 잃게 했던 그 사건들을,
되게 미워해왔었다.
꽤 오랜 시간 아쉬워해왔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미워했었다.
미워했다고 말할 수 없는 그것들을.
미워했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행복이란,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되는 것으로 .. (중략) ..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행복대 대한 총괄적인 개념과 .. (중략) .. 저에게 있어 음식 한 입과 즐거운 커피 한 잔이 .. (중략) .. 작은 행복 역시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내가 즐겨보는 모 블로그의 건강 칼럼이었다.
그 글은 내게 정말이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삥이님, 그곳에 삥이님 장난감이 있어요. 안 보여? 얼른 둘러봐. 행복해지세요.
눈물이 흘렀다.
두 볼이 아닌,
두 심장에서.
탄성이 나왔다.
목구멍이 아닌,
내 온몸에서.
감탄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시간이 없었던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잃은 건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시간을 들여 나를 좋아했던 그 태도가
통째로 증발해 있었다.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시간은 있었지만,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게 되었고,
옷을 고르지 않게 되었고,
잘 어울리는 색이 뭔지도 까먹었고,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사는지조차
뇌가 스킵해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생존 반응만 하고 있는 생물체가 되어 있었다.
나를 표현하던 패턴들,
나를 사랑하던 습관들,
조금 더 다듬어 입었던 바지의 주름,
귀에 꽂던 플레이리스트의 순서,
의미 없이도 들추던 책장 한 장,
미간에 스치던 향수의 노트.
그 모든 게,
하나씩,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인간이 어깨 위 장난감을..
그저 못 만지는 줄만 알았더니,
아예 보지도 못하는구나.
내가 나를 바라봐야
남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인데,
내가 나를 바라보지 못하니까
남이 안 보였던 것이다.
이런
몽총이.
어떤 도시는,
기온이 아니라 사람의 온도로 계절을 판단하게 한다.
그 도시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을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나는 그 안에서
'나로 살아지는 방식'을 몰라 헤매고 있었다.
이것을 정작,
새 도시에서 느끼게 될 줄은
저기 지나가는
2,500살 먹은 현자도 모르셨을 거야.
시간은 직선이라며,
앞으로 가는 줄만 알았지.
감정 하나가
그 복잡계 속에선
매개변수 하나처럼 전부를 바꿔버릴 줄.
정량화도 못 하는 생각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모든 걸 흔들 줄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더니,
결국 내 일상이 그 말 뜻 그대로 될 줄 말이야.
그러니까, 이젠
조금 허하고,
조금 실하게 살아보려 한다.
겉으로는 비어 있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실속이 있는 사람으로.
실속이 없어 보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강한 전략적 기만술을 갖춘 사람으로.
지혜로운 자는 속으로 조용히 처신하되, 겉으로는 어리석게 행동한다.
Paṇḍito santo upaparikkhati, bālo viya viharati. (意역)
└《Dhammapada 법구경》
그거시 바로 '붓다'의 미학.
어렸을 때의 삥이는
??? : 부..우..ㄸ..따..!
라고 발음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