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케팅계의 테리우스에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당신은 논외라서요. 일반인들이 어떻게 따라해요 ㅋㅋㅋ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함께 해주세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당신은, 한 가지만 줘요. 수익화는 우리가 책임져 줄게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어떤이들은 얼마나 무책임하면서도, 윤리 의식이 없는지 아는가.
저기 종로,
저기 서초동,
저기 삼성동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이나 하겠냐는 말이다.
누군가는 진짜로 학문에 울고,
누군가는 대중과 산업을 움직여보겠다는 마음으로 밤을 새우는데,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학문을 깨닫고 대중을 손바닥 위에 얹어보겠다 하는 인물들은 적어도 더 많은 논문 속에서 눈물흘렸다는 사실을,
그들의 세계를
"고객 3배!!!! ㅇㅇ사장님은 그래서 안돼요"
라는 한 줄의 카피로 축약하는 산업이 있다.
본디 제대로 된 광고 대행사는 소상공인들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너무 소액이에요)
그래서 A학원(실제로 학원은 아님)에서 강의가 나오면 N명의 수강생들이 N+@으로 뻗쳐 소상공인들에게 'B 상위노출 마케팅'을 해보자고 시동을 거는 것이 작금의 2020년대 대한민국 '(자칭) 기획사' 구조이다. (AI 배우면 마케팅으로 500만원 벌어요~ ㅋㅋ)
중요한 것은 A를 모르는 소상공인들에게 B를 하라고 눈속임하니 B까지밖에 모르던 A 출신 인물들이 C를 해주는 척 하고 돈을 벌며 실제로는 'B를 행하는 인물들이 성과'를 못보니(당연) 뉴스와 미디어에는 '나쁜놈'이라고 아예 직업군이 낙인을 찍히더이다.
정작 국내에 젝시믹스와 안다르가 어떻게 투쟁해왔는지 그 이면을 알는지 모르는 비학계 출신들이.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건
대중이 아니라,
대중을 바보로 취급하는 구조다.
박제되는 천재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박제도 되지 않는 채로 대중을 속이는 자들'이지 않을지.
당신 말이다.
최근,
눈 앞이 캄캄했다.
좋아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학문인데,
앞이 보이질 않았다.
내가 필요했다고 뽑은 어떤 이가 장애물이 되더이다.
애기였구나. 수도없이 깨닳았다.
나는 애기구나.
그래, 이렇게 어린 '내/네'가 어찌 기업 출신 앞에 주름 잡으랴.
그러면서도
내 감히 꿈 꿔왔다.
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
누군간 기다릴지어니.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
신은 어디에 있는가.
본디 신은 눈 앞에 있다고 하더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본디 신은 역사책 속에 있다고 하더이다.
1초,
1시간,
1일,
1년,
10년,
100년,
1000년
혹은
불교의 시간 말마따나
사방 1유순 크기의 거대한 바위산이
100년에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여 다 닳아 없어지거나,
철성 안에 든 겨자씨를 100년에 한 알씩 꺼내 없애는 데 걸리는 시간인
억겁(億劫)의 전의 성현(聖賢)은 내게 어떤 해답을 주실 것인가.
내,
알 수 없겠지.
내 다만,
유추는 해볼 수 있겠지.
미천한 시각으로,
본디
知止而后有定.
(멈출 줄 알아야, 비로소 마음이 다시 고요해진다.)
ㄴ 공자(孔子)
道阻且長. 行之則至
(길은 가로막히고 길다. 하지만 걸으면 도착한다.)
ㄴ 노자(老子)
無用之用이 大用也.
(쓸모 없는 시간이 가장 큰 쓸모가 된다.)
ㄴ 장자(莊子)
라고 하더이다.
그러니,
일단 멈추어 호흡하고,
일단 길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일단 새로운 글이 태어나기 직전의 어둠이라고 하더이다.
빛이 보일 때 쓰는 게 '글'이 아니라
어두워졌을 때 손을 더듬어 쓰는 글이
곧 '길'이 된다고 하더이다.
'글'이 '길'이 되려면
'ㅡ'라는 가로가 세로로
한 번은 일어서야 하듯이
누웠다면,
일어서라고 조언하더이다.
신(神)이시여,
내 많은 리소스를 투입했나이다.
아직 깨닫지 못하였으메,
세상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려 하더이다.
신이시여,
어찌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겠나이까.
신이시여,
이리 약할 때의 나는
어찌 강해질 수 있나이까.
신이시여,
시간은 내게 무기일진데,
시간을 어찌 내 목을 옥죄는 장치로 두시나이까.
신이시여,
당신 옆에 그 성현들은
어떤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묻더이까.
내 알 수 있다면,
같은 표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신(神)이시여,
당신(身)이시여,
나 자신(我)이여.
삼신(三神)이시여.
가능하다면, 날 도와주소서.
수많은 광고주들이 존재한다.
A는 기업이라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상장할 것이고,
B는 그렇지 아니하여, 그렇지 아니한 것을 넘어, 그 곳에 갇혀 그 곳의 진리를 전부인 채 인지해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러니, 더 깊이 들어가야한다.
표면의 말이 아니라, 그 말들의 출처까지.
겉의 구조가 아니라, 그 구조를 만든 세계까지.
가끔은 깜깜해서,
글을,
어떤 말로 시작할지조차 깜깜하다.
요즘이 그러하였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되
앞을 보지 않으면 안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세상 일은 본디 그러한 법이어서
밝음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고,
사람의 뜻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고 하더라.
어떤 날은 숨 막혀도
길은 멈추지 않았고,
숨이 가빠오는 밤에도
한 줄의 글만 붙잡아 살아야 했다.
앞서 간 이들의 말처럼,
멈추면 고요가 오고,
고요 안에서 다시 길이 보인다 하였으니,
오늘의 혼침 또한,
내일의 첫 문장이 숨어 있는 자리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다만,
이 마음을 가다듬어
또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나를 기다리는 게
무엇 하나 있겠으랴.
그래도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 믿고.
ㄴ 어떤 성현의 말 중.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우리는 늘 구조의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존재인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