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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n 30. 2024

남는 것은 사람

한 결혼을 위해 필요한 온 마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 결혼을 하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준비하는 결혼인 만큼,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하며 만들어 왔지만,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손길로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는 것.


스튜디오 촬영때 쓸 소품 그리고 드레스 다림질도 모두 셀프


대표적인 사건은 스튜디오 촬영 때였다. 인스타에서 미리 봐둔 강화도의 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아무래도 웨딩 플래너나 헬퍼도 없고, 엄청난 리서치를 거친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하는 방법뿐이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화장품 업계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었던지라, 친구 사수분께서 프리랜서로도 헤어 메이크업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먼 강화도까지 친구와 함께 와주시기로 하셨다.


먼 강화도까지 온 친구와 친구 사수분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운 줄 알았다. 촬영 하루 전날 스튜디오 측과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됐고, 우리가 헤메 받을 장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금 생각해도 아찔) 아마 메이크업, 헤어, 플라워, 드레스 및 수트 구입, 사복 구입, 소품 및 액세서리 등등 준비할 것이 한가득이었던 내 머리가 과부하가 되어 놓쳤던 것이겠지. 그 후 곧장 여러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이모는 우리에게 스튜디오 근처 한 카페를 알려주셨고 전화로 양해를 구한 후 허락을 받았다. 


사운드에 진심이셨던 카페, 흔쾌히 자리를 내주셨다(빵도 맛있었다!)


촬영 당일, 카페에 도착하기 전에도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쫓겨나면 어쩌지, 멀리서 도와주러 오시는 분들께 너무 죄송한 일은 아닐까, 헤메는 잘 받을 수나 있을까, 사진 잘 안 나오면 어쩌지 등등. 우리보다 먼저 카페에 도착하신 친구 사수분께서 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셨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도착하면 카페 바로 옆 개인 가정집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카페 옆 누군가의 집(헤메에 이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한지 미처 몰랐었다)


우리 사정을 딱하게 보신 것인지, 하늘이 도우신 건지 우리는 누구신지도 모를 어느 약사 분의 집 안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웃픈 상황. 그래도 우리는 무사히 모든 준비를 끝내고 스튜디오 실내 야외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가 잠깐씩 오고 미세먼지 한가득이던 날씨는 야외 촬영이 다가오자 날이 개었고, 그래도 모든 것이 감사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그제야 편안한 ‘진짜’ 웃음이 지어졌다. (이 외에도 하루 전 꽃시장부터 옷 픽업을 위해 여러 곳을 함께 다니며 운전해 준 엄마에게도 무한 감사를.)


명색이 전시인데. 스튜디오 사진만 찍을 순 없었다. 당시 우리는 인스타를 보다가 일상생활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스냅 사진이라는 것인데, 우리 전시에도 저런 사진들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인들 중에서는 스냅을 찍는 분이 없었고, 업체에 맡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했던 컨셉이 자연스럽게 몰래 찍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로케이션도 여러 곳일 수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었다.


One of 파파라치 샷

하지만 우리의 사정상 그렇게 많은 인건비를 지급할 수는 없었고, 대안을 생각해야만 했다. 인스타를 통해서 몇몇 스냅 사진 작가님과 연락했지만 역시나 그 괴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러던 중 아마 점심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무심결에 직장동료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었다. 그랬는데, 마침 자기가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낸 동료분이 있었고, 업은 아니지만 취미 겸 부업으로 가끔 친한 지인들의 스냅을 찍는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 지인 분도 연습을 위해 찍을 대상을 찾고 계신 것 같았다. 딱 우리가 원하는 분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고, 또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우리의 스냅사진을 부탁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직장동료의 소개로 우리는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고, 흔쾌히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셨다.(이 자리를 빌려 그 직장동료와 작가님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남긴다.)


여러 촬영 로케이션이 있었지만 우리가 찍은 곳 중 한 곳은 우리가 같이 일했던 업무 공간이었다. 우리는 사내커플로 만났기 때문에 우리가 만난 곳에서 같이 사진을 찍으면 전시의 구성상 중요한 '어떻게 만났는지' 부분을 채울 수 있으리라.

 

우리만의 추억이 담긴 공간들


사실 우리가 스냅을 찍은 이 공간은 웬만하면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직원이라고 해도 공간을 마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면 공간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물론 다른 직원들과 경비 선생님께도 양해를 부탁드렸지만 어쩔 수 없이 눈치가 살짝 보이고, 민망하기도 했다. 얼른 찍고 도망가자.


우리의 걱정과 달리 사람들은(심지어 연습을 하다 말고 나와서) 우리의 찍는 모습을 엄청 반겨주었다. 촬영에 필요한 소품을 빌려주기도 하고, 선물을 주시기도 하고, 결혼 전시 날짜를 물어보고 본인들도 꼭 가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순수한 사람들, 몇몇 분들은 정말로 결혼 전시에 와주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무용수들의 선물 '찹쌀생주'

이번에 글을 쓰면서 사진을 찍을 때의 순간들을 생각해 본다. 남는 것은 사진뿐일까? 사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때의 사람들이 기억이 난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사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축제를 온 마을이 준비하듯이 우리의 결혼 전시를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름의 자리에서 도와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말고도 수도 없이 많았던 도움의 손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인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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