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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n 26. 2024

This is not a SMALL wedding

자, 이제 부모님께 결혼전시 허락도 받았으니, 남은 것은 두루뭉술한 머릿속 그림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일이다. 누군가가 보기에 우리가 선택한 결혼식은 그냥 “스몰”웨딩이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일은 그만큼 “스몰”한 것들도 다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웨딩 플래너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결혼식을 치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던 우리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알아봐야 했고, 각자의 일로 바빠 무언가를 놓칠세라 일단 생각나는 것들은 모두 To Do List에 넣어놓곤 했다.


일단 잠시 정신없는 서울에서 벗어나 2박 3일간의 집중 워크숍을 가지기로 했다. 장소는 솔이 사랑해 마지않는 영월. 


영월 가는 길


우선 머리를 쓰기 전에 감자바우 옹심이집에 들러 고소하고 쫀득한 옹심이를 먹어주고, 배를 꺼트릴 겸 중간중간 차를 멈춰 세우고 전시에 쓸지 모를 사진들을 찍어주었다. 


쫀득한 감자 옹심이
전시에 쓸 사진 찍기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전시 기획의도를 정리하고 주제 및 컨셉을 정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결혼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우리가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단지 우리가 결혼을 한다라는 안내방송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워크숍 장소 / 영월의 한 북스테이


Like a Dream. ‘꿈만 같은’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우리는 모든 상황이 현실적이지 않고 꿈만 같다는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출발시켰다. 또 꿈을 꾸며 살아가길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 꿈을 좋아한다는 의미도 넣었다.


Everything happens to me (Rainy Day in New York)


결혼전시에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도전과 모험’이 아니었을까. 전시로 결혼식을 하는 시도도, 우리가 살아온 과정도, 우리의 만남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도 결국은 ‘도전과 모험’이었다. 그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음미하고 추구하며 살아낼 만한 가치가 있기에. 현실에 부딪혀 꿈이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에 누군가에게는 도전이 되고 응원이 되는 우리의 전시가 되길 원했다.



우리의 워크숍은 끝장 토론과 같았다. 우리의 고민과 선택은 이번 워크숍에서 해결되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에 여기는 영월의 북스테이였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을 하루종일 읽을 수 있었다. LP 음악도 있었다. 워케이션 같은 느낌.


왜 하필 82살일까?


유명한 뮤지션이 시골체험을 하고 간 경험이 담긴 책과 사진, 본인들의 결혼과정을 책으로 엮은 신혼부부의 이야기 같은 것들도 찾아보면 있었다. 시골에서 소소하게 단순한 진심을 담아 결혼식을 한 신혼부부도 있었다. 우리 같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는구나.


이 내용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밤이 새도록 끝장토론을 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내용들이 줄줄줄 꼬리를 물었다. 힘든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운한 느낌, 얘기를 하다 보면 진짜로 이루어질 것 같아서 그런 걸까. 뭔가 설레는 것이 시작될 것 같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오늘 다 결정해 보자.


- To do

결혼반지, 공간대관, 상견례(8명), 스튜디오 사진, 스냅사진, 일상사진촬영, 사진 에디팅, 메이크업, 플라워, 소품 및 액세서리, 수트 구매 및 대여, 촬영용 사복 구입, 촬영용 드레스 구매 및 대여, 촬영용 사복 구입, 가족예복, 전시기획 구체화, 당일 솔 드레스 대여, 당일 헤어메이크업(부모님 포함), 당일 식대, 당일 답례 선물, 청첩장(전시티켓) 제작 및 인쇄, 도우미 4명, 부케, 당일 다과(케이터링), 본식 촬영, 신혼여행, 전시 제작(시트지, 액자, 공간 구성품 등), 신혼여행 비행기표, 숙소(아고다), 본식 사진 및 비디오 섭외, 상견례(4월), 식전 영상(6월), 음식예약(6월), 전시공간 확정 및 콘텐츠 배치(4~5월), 전시 대관 공간 투어


이 정도가 아마 그때 적었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물론 세부적인 예산이나 일정이나 이런 것들도 같이 논의했다.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먼 거리 가족들도 챙겨야 하고 뭐 그런 것들이 한도 끝도 없이 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돌이켜보면 엉망진창 우당탕탕이었다.


다행인 점은 우리 둘 모두 전시기획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연락할 업체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만약 혹시나 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직접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중에 직접 하다가 완전히 기절하는 줄 알았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각자 맡은 바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 일을 하듯이 타임 스케줄을 공유하고, 여기저기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꿈은 원대하고 뭉글뭉글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언제나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 가열차게 발을 휘저어야 한다. 여기서는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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