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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n 30. 2024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일(신랑편)

I see you

우리가 전시로 결혼을 하기로 한 후부터 항상 머릿속에 숙제처럼 남겨진 것. 비교적 넓은 공간을 대관한 후부터 부담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공간 매니저님께서 작품이 몇 개냐고 전화로 물어올 때마다 확실히 답할 수 없었던 것.


'전시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사진을 전시하는 결혼이라고 하지만 사진으로만 모든 것을 채우기에는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유명한 브레송이나 카파 같은 사진작가가 아니니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도 우리를 표현해서 전시를 채워보고 싶었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래도 조금 남들보다 열정이 있었던 일.


나는 사실 노래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기타를 막 환상적으로 치진 못하지만 코드를 잡을 수 있고, 스케일도 공부해 본 적이 있었다. (삶의 목표 중 하나가 싱글 앨범을 만들어 보는 거였다.) 스튜디오 겸 연습실을 만들어서 운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래를 만들어볼까라는 의견이 나왔을 때, 말은 좋은 생각이네 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자신이 없었다. 일을 하고 있었고, 도저히 뭔가 창작해 낼 만한 생각의 여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한창 노래를 만들 때의 나는 아이디어 같은 게 많았고, 가사가 될 만한 소재도 많았다. 지금은 창작세포가 많이 죽고, 기타도 조금 어색한데 이제 와서 다시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인생 중대사 결혼이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보통 기타를 친다는 사람을 만나면 하는 질문이 있다.

'가사를 먼저 쓰세요? 멜로디를 먼저 쓰세요?'


내가 이 질문을 듣는다면, 사실은 곡마다 다르긴 하지만 가사를 보통 먼저 쓴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사를 먼저 쓰기로 했다. 그전에 고백하자면 먼저 혼자서 가사와 멜로디 쓰고서 솔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처음 곡은 뭔가 잘해보려고 아등바등한 애매하고 어려운 느낌이었다. 멜로디도 가사도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가사를 쓰기로 했다. 제목은 아바타에 나오는 명언 'I see you'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의미는 당신을 그저 본다는 뜻보다는 본질적인 당신, 즉 당신의 영혼을 보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


I see you


I see you 그댈 보면,

내 마음을 아는 듯해

이토록 다른 나를 알아주는 그대


그대 날 되찾게 해

그대 날 웃게 해


가만히 그댈 보면

무엇도 두렵지 않아


이제 우리 함께 모험을 떠나요

멀리 더 멀리 그대와 함께

난 그댈 믿어요


(간주)


I see you 꿈꾸게돼,

내 마음을 아는 듯해

두려움 가득한 내게 용기 주네


그대 날 자라게 해

그대 날 꿈꾸게 해


가만히 그댈 보면

아무도 무섭지 않아

이제 우리 함께 모험을 떠나요

멀리 더 멀리 그대와 함께

난 그댈 믿어요


가사를 함께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단순한 진심이 언제나 통한다는 것이다. 가사가 어려울 필요는 없다. 그냥 진심이면 된다. 우리의 생각을 담백하게 담아내면 좋은 가사지 않을까? 누가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담백한 가사에는 담백한 멜로디가 붙는다. 그렇게 단숨에 우리의 노래는 완성되었다.


Starry Sound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우리의 이전 글처럼 완성된 노래는 또다시 우리의 사람들에게 넘겨진다. 우연처럼 주변에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지인이 있었다. 찾아가서 뵙고 일정을 잡고 녹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굳이 화려할 필요는 없었다. 단순하게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녹음해 보자. 


우리 노래에는 그게 어울릴 것 같아. 녹음 과정 자체는 어색했지만 즐거웠다. 어릴 때 나는 이런 장면을 꿈꿔오기도 했었던 것 같다. 우리의 결혼을 통해 멈췄던 나의 개인적인 모험도 조금씩 전진.


'I see you' 뮤직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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