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Jul 01. 2024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일(신부편)

디자인 대장정

나는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대학교 때 건축과 공연영상을 복수 전공하며 공간, 콘텐츠, 문화예술, 사운드, 사진 영상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것들의 공통점은 한 공간(오프라인, 온라인 둘 다 될 수 있겠다)을 콘텐츠로 채워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결혼식을 전시로 진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아니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건축공부하던 시절


사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나는 뛰어난 재능이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열정으로 부딪히고, 나름의 노력을 다하는 편이랄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결혼전시만큼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메시지를 잘 다듬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도면 위 무드보드


명준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전체적인 기획과 구성을 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디자인이었다. 청첩장 대신 만든 전시 웹플라이어, 전시티켓 외에도 공간에 들어가야 할 디자인물들이 정말 산더미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3부의 기획에 따라 전시 구획을 나누고 각 공간 내용별로 가벽을 어떻게 쓸지, 어떤 분위기로 구성하고 싶은지 도면 위에 무드보드를 넣어 한 장으로 정리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감이 제대로 안 와 이 공간에 200명 가까이 되는 손님들이 다 들어올 수 있을지(물론 나눠서 오신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걱정이 내 마음에 계속 자리해 있던 게 사실이다.


우선 각자 아이패드에 스케치를 해보았다


전체적인 컨셉 및 키워드를 동화, 모험, 몽환적인 느낌의 공간으로 잡고, 캐릭터를 만들고, 스케치를 해나갔다. 메인 사이니지 현수막, 무대 백월, X배너, 포스터, 시트지, 폼보드, 행잉 배너, 천현수막, 스티커, 포토부스 템플릿, 패브릭 편지, 식순지, 인포가이드, 사진, 영상 그 외에도 수많은 자잘한 소품들까지. 갤러리로 여러 번 사전 답사를 거쳐 위치와 사이즈를 체크했다. 


인포가이드, 포토부스 템플릿, 행잉배너 (수많은 디자인 중 일부...)


디자인을 마치고 발주에 들어갔다. 어디에 맡길까 생각을 하다, 전 직장에서 일할 때 도움을 받았던 모두봄이라는 업체의 대표님이 기억이 났다. 사실 이 업체는 출력이나 인화, 전시 설치 등 필요한 부분을 해주실 수 있는 곳이라 대부분의 힘든 설치 작업을 모두봄에 맡겼으면 일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다만 당시 발주를 조금이라도 빨리해서 시간을 아끼자는 생각에 주말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업체에 발주와 일을 나눠 맡긴 게 문제 아닌 문제였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자는 생각과 디자인물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을 수 있진 않을까 했던 계산이 큰 오산이었다.


그래도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치고, 실제 설치에 들어가고(물론 그 과정도 너무너무 많은 수고와 도움이 동반되었지만), 어느 정도 완성된 결혼 전시장을 봤을 땐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이 찾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일을 하면서 결혼 준비를 어떻게 했나 싶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도 프리랜서로 일한 덕분에 시간을 잘 핸들링할 수 있었고, 한때 회사 동료였던 명준과도 큰 문제없이 잘 소통했기에 우리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두근두근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전 06화 우리라서 할 수 있는 일(신랑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