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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r 01. 2023

통과의례

그동안 겪은 갈등의 의미를 되새기기


Proverbs 27:17

잠언 27:17

As iron sharpens iron, so one person sharpens another.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나는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다.

아마 나를 오래 봤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심지어 나를 보고 '자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만큼 나는 무의식적으로 갈등을 피하는 편이고, 고집을 부릴만한 상황을 경계하는 편이다, 누군가의 기준이라는게 단지 설명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니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내가 근무를 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 말하자면 기간이 정해져 있는 무언가 할 때, 그 속에서 잘 지내다가도 한 번 정도는 어떤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을 경험상 알게되었다. 그 문제는 내 탓일수도 있고, 남 탓일수도 있고 공평하게 서로의 탓일수도 있다. 갈등이 될만한 일을 벌려 놓고 숨기다가 후폭풍이 큰 경우도 있었던 것 같고, '덤벼라 갈등아' 정도로 무턱대고 맞선 대비한 갈등도 있었던 듯 하다.


이 글을 적어보는 이유는 그 통과의례 같이 반복되는 갈등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서다. 천명처럼 어딘가에서 나는 누군가와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것 때문에 전전긍긍하긴 싫으니까. 조바심 내지 않고 어떤 집단에서든 잠시나마 '함께' 존재해보고 싶고, 좋은 끝을 내고 싶으니까. 한 번 깨진 그릇은 자꾸 깨어지기 마련이니까.


2020년 겨울쯤 됐을까..

내가 일했던 센터는 코로나로 폐쇄되어 있었다가 점차 사람들을 받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공간을 사용하는 것에 5명까지만 허가 한다는 식이었다. 나는 대관을 관리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의 역할이었다. 나는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담당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운영상 많은 부분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내가 직원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계약직도 등급이 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주말에 센터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공간에 6명이 있다는 것이었다, 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무려 1명이 더 공간을 사용하고 있냐고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횡설수설 했다, 동시에 나는 대관의 '주' 역할 직원에게 인원수에 대해 말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전가하기는 싫었다, 나는 스스로 일종의 책임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불어 나 역시 고백하자면 6명이 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주말에 센터장님이 나오실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안일했다. 만만한 나의 잘못이라고 했고, 화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같은 회사의 다른 공간에서 일 할때는 내가 담당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예전의 내 위치의 직원A와 함께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되도록 하나의 업무를 책임을 지고 맡겨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간에서 제일 힘들게 일했던 시기였다. 어떤 프로젝트의 총괄을 맡아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A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계약상의 이유 등으로 책임을 더 부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팀장님이 기존 업무 외에는 추가 업무를 A에게 부여치 말라고 했다.


A도 사실 그때쯤에는 예전의 나처럼 별로 사업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기도 했다. A 역시 예전의 나처럼 사업의 사정을 잘 모르니 간신히 맡긴 업무도 내 기준으로는 조금 서툴러보였다. 하지만 A의 잘못을 물을 수 없었다. 책임은 '주'인 내가 지는 것이기에 난 차라리 내가 야근을 해서 업무를 마무리 해야 했다. 아시겠지만 야근을 한다고 사업의 질이 좋아지는게 아니다. 그냥 쳐내고 있을뿐..


이 사업에서 난 사실 수동적이었다. 문화기획에 크게 뜻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공공기관에서 적당히 그들의 의미를 찾아서 내게 주어진 예산을 사용하면 그 뿐이었다.(지금은 일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간 해온게 있으니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언제나 그렇든 내 삶의 모토는 사자가 먹이감을 쫓는 것처럼 항상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친한 동료들에게 의견을 물어가면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그 기획은 아마 'OO'편의점 같은 느낌이었다. 사업장 내부에 작은 편의점을 설치해보는 아이디어였다. 초기 아이디어여서 가볍게 팀장님한테 의견을 물었다. 팀장님은 내 얘기를 듣더니 탐탁치 않아했고, 다른 직원들을 불러놓고 아이디어를 물어뜯게 했다.

난 잘 대처하지 못했다. 그 아이디어는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물어뜯긴 경험이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때부터 정신은 없어지고, 자신도 없어졌다. 일에 끌려다니게 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나중에 팀장은 내게 왜 이렇게 휘둘리냐고 물어봤다. 좀 더 주체적이 되라는 조언을 남겼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직원들과의 공유를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이 후에 난 되도록이면 나름의 완성본만 팀장에게 들고 갔다.


최근에 직업 교육을 들은 적이있다. 교육의 마무리로 2주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팀 구성에서 B를 만나게 되었다. 프로젝트 팀의 장을 맡고 싶다던 B는 20대 중반의 어린 친구였다.

브레인스토밍부터 즉 기획의 단계부터 자기의 말에 반하면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인정하기 죽도록 싫어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사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B의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 몇 번이나 참았다. 본인이 맡은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이 진행한 것을 깔보는게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안하무인이었다.

본인의 의견이 사회에서는 반대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B에게 알려줘야지 B를 따끔하게 혼내보고 싶다고 쟤는 데여봐야돼 등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도 했다.


그러다 프로젝트 발표전 마지막 주말에 일이 터졌다. 오전 8시반에 B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주말 오전 8시반에 전화라.. 프로젝트의 마감을 앞두고 급한 마음을 가지는건 이해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교육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누누히 우리가 한 데까지 보여드리면 된다고 말해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나중에 메신저 및 통화로 나눈 내용은 대략 이렇다. B는 나 말고 모든 팀원들이 주말에 나오니까 내가 나와야하는지 확인해야겠다는 것 때문에 이른 아침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주말에 일이 있었던 나는 사전에 내용을 공유받은 바가 없어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 금요일에 팀원들끼리 주말에 나오자고 했으면 전화하기전에 미리 내용을 남겨주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말간의 할 과제를 내게 부여한다고 했다. 사실 부탁조로 말했다면 충분히 들어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B는 시종일관 명령조였다. 나는 주말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사전에 내용을 공유받지 못했음에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기 싫은 기분이었다. 나는 따지기 시작했고, B는 몇 번의 말싸움 이 후 나와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후 B는 주말에 안나온 책임을 물어 날 프로젝트의 발표에서 배제해버렸다. 그리고는 바쁘시니까 배제해드렸다라고 말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갈등은 뭐랄까 자기 맘대로인것 같다

같은 기준으로 대처하면 자꾸만 문제가 생긴다.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책임을 지는 직무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책임자가 되어 센터장님에게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담당자가 되어 누군가에게 업무를 부여할 때는 책임이 확실히 내게 부여되었다.

A는 그런 역할이 아니잖아


내가 너무 수동적이라면 왜 이렇게 의견을 안말해?

내가 너무 적극적이고 대처가 빠르면 왜 이렇게 민감하게 굴어?


그렇다. 여기서 내가 느낀건 사람들 사이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한 번만 더 참았으면..

그 때 왜 나는 화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들은 다 결과론적인 얘기다. 참지 않고 화를 냈다면 더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든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나 스스로를 내가 낮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내가 조금 더 '지혜'로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조만간 또 다른 집단으로 또 다른 나라로 또 다른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반쯤 당연하게도 어떤 갈등을 겪을것이고, 사실 그런게 커져서 아예 관계가 망가질까봐 두렵다.

나이를 먹으니 감정소모가 무섭다.


나는 타인에게 감정을 들어내고 화를 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기에

더 많은 작은 갈등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 조금 더 지혜로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B와의 갈등 속에서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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