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불안과 책임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다.
아침이면 정신없이 뛰쳐나오듯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이면 영혼이 탈탈 털려 퇴근하고 겨우 저녁을 차려먹는다.
내일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눈뜨면 또 아침이 될까 봐 자고 싶지 않다.
늦게 자니 배가 고프다. 배민을 뒤적인다. 야식을 시킨다.
그 새벽 내 주문을 마지막으로 하루 장사를 마감한 닭꼬치는 질기고 속도 아프게 했다.
‘내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스스로 부여한 사명감으로 피로를 무릅쓰고 늦게까지 견디던 시간들.
모두 이런 줄 알았다.
무한한 자유의 시간
퇴사 후 알게 된 점은 세상에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이 매우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출퇴근을 할 때는 모두가 그런 정해진 시간대로 사는 줄 알았다. 차가 밀려도 ‘다 출근하느라 바쁘네.’ , ‘퇴근길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나와서 보니 그 시간에 놀러 가는 사람도 많았다. 평일 오전에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디지털노마드로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내가 아는 대로 보는 대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퇴사 이후 주어진 놀라운 자유의 시간이 즐거웠다. 마음껏 시간을 썼다.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을 시간, 나는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유치원 공부를 마칠 시간이 되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지’하는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넷플릭스와 휴대폰은 내 시간을 순. 삭. 시켰다.
직장을 다닐 때는 40분씩 10분씩 쪼개어 쓰던 시간 단위들이 뭉텅이로 순간 삭제 되었다.
‘아니… 내가 뭘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많은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녔는데 남는 것은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퇴사 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로 하나씩 루틴을 만들었다.
동네 뒷산에 1시간 코스로 산책도 다니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조금씩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나만의 시간표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불안
하지만 요 며칠은 계속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내가 어떤 낡은 건물의 지하에 있었다. 어디서부턴가 물이 새어 나오고 건물에 금이 가고 있다.
-어딘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옆을 보니 손가락만 한 지네 같은 벌레들이 슥슥슥 지나간다.
뭐 이런 비슷비슷한 느낌의 꿈들을 자꾸 꾼다. 뭔가 파괴되는 꿈, 벌레가 나오는 꿈.
그래서 평소에는 잘 궁금해하지도 않는 꿈해몽을 검색해 본다.
사람들도 다들 비슷한 꿈을 꾸고 찾아보는지 꿈에 대한 내용과 해석도 참 비슷하다.
내가 꾼 꿈들은 ‘현실에서의 불안한 심리’라고 했다.
그렇다. 요즘 나는 무의식적으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무한한 자유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 이면에는 무수입의 내 처지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슬그머니 나를 잡아끈다.
퇴사하기 전 내가 꿈꾸던 일, 경제적 자유, 내 사업, 아티스트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이 ‘너 지금 잘하고 있냐?’라는 자기 검열을 하고 질책을 한다.
외벌이 중인 남편에게, 퇴사 이후의 삶을 궁금해하는 친구들, 동료들에게 뭔가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른다.
겉으로는
‘아~ 이 자유 너무 좋아.‘라며 여유를 부리지만
수면 아래로는 수없이 발버둥을 치고 있는 오리 같달까.
내가 선택한 자유인만큼 퇴사를 하기 전 내뱉었던 말들을 책임질 때가 다가온다.
지금부터 보내는 시간은 그저 즐거운 시간이 아니고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쌓아야 할 시간이다.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그리고 글을 한 개라도 더 쓰는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열심히 일한 자 자유를 누리라.’ 라며 퇴사했지만
‘자유를 누린 자 열심히 일하라.‘라는 압박감에 잠 못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