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자아 성장기 (2015~2018)
가스라이팅의 늪에서 그간 몸부림치지 않고 순응했던 나는 서서히 바깥을 향해 기어나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 내 손끝이 딱딱한 바닥에 맞닿았던 순간이 찾아왔다.
거의 2년 가까이의 인고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사수에게 미처 절제하지 못한 경멸의 눈빛을 쏟아부었다. 쉽게 말해 아주 들이받았다.
그에게 들이받게 된 그날의 사건 또한 지난 연재 소재와 같은 '저녁식사'였다.
나에게는 K과장과는 다르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는 Q과장이 있었다. Q과장과 함께 하는 업무는 상호 맡은 분야가 독립적이라 서로의 결과물에 대해 존중해야 하는 특성도 있었지만, 누가 하나 밤을 새야 하면 외롭지 않게 같이 밤을 새우고 다음날 보고를 준비하는 우정이 느껴지는 관계였다. 특히 그가 형으로서 듬직하게 나를 기다려주는 관계였다. 술자리에서 또한 말이 잘 통하고 동생의 말을 세심히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다 보니 K과장에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적 유대감이 강했다.
그날 보고를 마치고 Q과장과 술 한잔 하는 자리가 잡혔고, 그래 고생했으니 오늘 술 한잔 진하게 마셔볼까! 기대되는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잔여업무를 신속히 끝내보려고 나의 키보드에서는 타조가 뛰는 듯한 소리로 불이 나고 있었는데, K과장이 다가왔다.
"김지훈, 밥 먹으러 가자"
"아 과장님 저 오늘 약속 있습니다..ㅎ"
"뭔 또 약속이야. 누구랑 먹는데?"
"Q과장이랑 술 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와.. 난 안 부르냐? 따돌리고 지들끼리 먹네?"
나의 이성의 끈은 팽팽하게 당겨져 실 한 올 한 올이 조금씩 끊겨가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과장님은 술을 안 드시니까요.. 그리고 저희 잔여업무 하다 보면 여섯 시에 바로 못 나가서요."
"술 안 먹고 앉아 있으면 되지. 말 뱅뱅 돌리지 말고."
"..."
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더욱 참지 못할 것 같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남은 보고 메일을 써 내려간다.
"야. 내가 위야 쟤가 위야. 내가 쟤한테 가서 오늘 약속 취소하라면 되는 거야?"
자리에 앉아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마른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손바닥에 나의 표정을 감춘 채로 푸념한다.
"아뇨.. 뭘 또 그렇게.. 근데 과장님 왜 이리 괴롭히셔요..."
"괴롭혀? 너 진짜 괴롭히는 게 뭔지 보여줘? 한 번 진짜 해줘?"
그때 절제의 끈의 마지막 실 한 올이 끊겼다.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 바로 앞에 서서 눈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지긋이 갈면서 말한다.
"이게 지금 괴롭히는 겁니다. 지금 괴롭히는 게 아니면 뭔데요."
K과장은 얼굴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며, 입을 열지 못하고 지렁이의 강렬한 꿈틀댐의 황당하여있다.
약 10초 간의 노려봄과 정적이 흐르고, 그가 앙증맞은 대사를 꺼낸다.
"야. 너 이제 나한테 형이라 하지 마라. 이제 형동생 사이 아닌 거다. 와 이 새끼."
그의 계집아이 같은 대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자리로 걸어간다. 삐져버린 15살 소녀였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여 이런 나약한 인간에게 고개와 허리를 숙이고 살았던가. 타인과 관계함에 대해 깊게 돌아보고 고찰해 본다.
그는 진작에 퇴근하려 짐을 싸 놓았는데 자신의 자리에서 괜히 노트북과 모니터를 킨다. 적잖이 당황하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의 턱을 강타하고 싶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린다. 약 10여분이 지나고, 차차 이성을 찾았고 상무님이 지시했던 그와 엮여서 해야 될 적지 않은 업무들이 있었기에, 그를 적당히 달래야겠다 마음을 먹는다.
K과장도 사과를 받고 싶다는 듯이 꿍하게 앉아서 공허한 마우스 클릭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앞에 가 말을 꺼냈다.
"과장님, 제가 그렇게 대든 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참지 못해 죄송합니다."
"...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런데 난 너를 믿었는데, 우리 관계가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나 보다. 우선 오늘은 그만 얘기하고 내일 저녁 먹으면서 얘기 나눠보자."
마우스 클릭하는 동안 머리를 많이 굴린 듯하다.
지난날 과오들에 대한 반성이 아닌 사회성 부족한 후배를 대하는 대인배 선배로서의 명분을 찾는 대사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날 저녁 나와 그는 서로 형식적인 화해를 주고받았고, 나도 다시 아랫사람으로서의 위치로 그를 대하며 그도 원래의 포식자의 계단 위치로 어색하게 뒤를 돌아보며 천천히 올라간다.
들이받고, 이내 한수 접었다.
나는 사회생활하는 직장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