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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Oct 22. 2022

家長

< 1장 >

새벽에 눈을 떴다.

주변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아직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기상 시간에 딱 맞추어 일어났다.

오늘이 근무가 있는 날인지, 비번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가 자는 안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으레 하던 것처럼 아내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아무 냄새가 없다.

'내가 못 느끼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무런 냄새가 없는 걸까?...'

 주방의 식탁 등을 켜고 매일 먹던 혈압과 고지혈증 약병들을 찾았으나 못 찾겠다. 아니, 약이 없어졌다. 아내가 약병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나 보다. '그런데 왜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랬을까? '

 오늘따라 평상시와 달리 이상한 구석이 많다.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씻은 쌀과 귀리와 섞어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고춧가루와 간장을 넣은 국에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콩나물국을 끓였다.

그리고는 아내를 깨우러 갔다.

"여보! 아침 먹어야지!"

"벌써 일어날 때가 됐었나!... "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닌 혼잣말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고 있다.

'나에게 고맙다는 뜻인가? '

예전에는 내가 먼저 일어나 아침 밥상을 차려 놓으면, 그 고마움의 표시로 나의 우람한 배를 끌어 안았던 것 같은데, 오늘은 씁쓸한 미소로 때우려나...

비록 아내가 나를 그렇게 대우하여도 오늘은 섭섭한 감정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제대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던 내가 밥을 안치고, 국을 끓였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군가가 나에게 요리하는 방법을 내 머릿속에 강제로 입력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아내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침구를 정리하고 안방을 청소했다.

'이것도 내가 생전 하지 않던 일인데...참...'

오늘은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달라지기는 했지만,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전에 나를 어떻게 대하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 지금 식탁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가 아내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 왜? 나는 저 여자와 식사를 같이 안 하지? 그리고 왜? 나는 배가 고프지 않지? '

배가 고프다는 단어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 2장 >


  2040년을 넘어서면서 자율주행 자동차에 관한 연구가 많이 성과를 보여 이제는 거의 모든 운송분야에 걸쳐 운전기사가 없어지는 추세이다.

 특히, 정기적인 화물운송이나, 철도는 자율주행으로 상업운행을 시작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고, 운수업에 종사하던 기사들은 차량 청소나 정비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러나 지방을 운행하는 농어촌버스는 아직도 사람의 힘을 빌려 운전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승객이 노인들이어서 프로그램처리된 기계들이 노인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상응하는 조치를 못 해 인사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회사가 시끄럽다.

 운송 분야에 자율주행자동차가 도입되면서 우리 회사도 자율주행버스로 대체한다는 공지가 떴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사실, 시골구석을 다니는 버스들은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멀었었다. 도로의 사정이 기준에 미달하고, 버스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승객이 연로한 노인들 이어서, 이 노인들이 행하는 예측 불가한 행동들에 대하여 컴퓨터 시스템이 논리적인 대응을 못 하고 버그를 일으켜 버스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정부에서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하여 자율주행버스의 도입을 차일 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한 공학자의 노력으로 이제 시골 버스도 자율주행의 시류에 동참할 때가 된 것이다.

버스회사에서 실제로 운전을 하던 기사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출하여 버스의 자율주행시스템에 결합했다. 이 때문에 에러율 0.00001%에 이르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완성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이것을 휴머노이드 로봇 드라이버 (Humanoid Robot Driver)HRD라 불렀다.

 이제는 시골버스도 인간 기사에서 HRD로의 대체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위키백과에서 해마]

(海馬 : hippocampus)라고도 불리며 대뇌  측두엽에 존재하며 기억을 담당한다.


해마는 서술기억(장기기억)을 처리하는 장소로 단기기억이나 감정에 관한 기억은 담당하지 않고, 경험이나 학습과 같이 축적되는 기억을 처리한다. ]


 위키백과에서의 설명처럼 해마는 감정에 대한 기억은 담당하지 않고, 인간이 살아 있을 당시 겪었던 경험과 학습한 지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인간의 해마와 기계를 연결한 휴머노이드 로봇에 의해 산업현장 및 사회 각 분야의 인력부족을 해결해 가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한때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人工知能)가 미래 기술을 대표하는 시절이 있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 A.I.가 접목되어 인간세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학습을 통하여 전문지식을 체득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분야를 접할 시에는, 예전의 지식 및 기술만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어서 완벽한 모방과 아름다운 조합은 가능했지만,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진전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가끔 컴퓨터가 버그(Bug: 벌레.컴퓨터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의 착오.)를 일으켜 국가의 중요시설 및 업무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사람들의 뇌에서 출한 해마와 기계를 연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한 천재 공학자의 덕분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물론, 이런 기술을 구현하려면 전문가들의 죽은 몸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일이 시급했다.



< 3장 >


" 댁에는 어떤 기종을 써요! "

" 우리는 그냥 A.I.기성품 사용합니다. 그래도 각 분야의 검증된 복제품을 쓰니, 로봇들이 사고를 칠 위험도 없고.... "

" 요즘은 휴머노이드 로봇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던데요...댁에는 별문제 없어요? "

" 저희는 큰 문제는 없는데, 그 로봇이 가끔 저를 이상한 눈길로 보는 것 같아요! "

" 그냥 렌즈 아니에요? "

" 그렇긴 하지만....가끔씩...옛날을 기억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 에이 설마! "


아내가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는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 왔다. 그런데 이 집안에 우리 두 사람 하고, 누군가가 더 있었는데....

' 아! 참!, 딸이 있었지!

참 별일일세... 그 중요한 일이 이제야 생각나니... '


 아내는 집으로 들어와 거실에 TV를 켰다.

날씬한 몸매의 쇼핑호스트가 맵시 좋은 옷을 입고 판매하려는 제품을 한창 설명하고 있다. 뒷굽은 아주 높고, 신발 앞부분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서 저렇게 편안히 서 있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판매하는 제품은 신발이나, 옷가지가 아니다. 꼭 멍키스패너를 용접하여 팔다리를 만든 것 같은 몸매의 로봇인데, 얼굴에는 광학렌즈 두 개만 덩그러니 보인다.

 입도, 코도 귀도 보이지 않는다. 외모로 보아서는 아주 형편없는, 별종의 조각가들이 폐품을 수집하여 제작한 고철 덩어리 같은 로봇이다.

" 여러분 이 로봇은 인간의 해마를 이용한 로봇으로 별도의 학습프로그램을 입력할 필요가 없는 최신상품입니다. 로봇 청소기처럼 배터리가 방전되면, 자동으로 충전기로 이동합니다. 또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시면 해마의 주인이 생전에 하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넣어 드려 생활비를 벌어오는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가장의 사망을 슬퍼하시지만 말고, 해마를 적출하여 가정부와 생활비를 벌어오는 일꾼으로 쓰십시오! 이 로봇 가장은 먹지도, 입지도, 또한 아내분들의 육체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매진 임박! 주문 마감 3분 전 입니다.

띠리리리... "


쇼핑 호스트의 자극적인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거실 안을 울렸다.

'무슨 저런 한심한 광고가 다 있나? 참 이상한 세상이네... '

나는 갑자기 몸에서 모든 피가 빠져나간 느낌을 받으면서 피곤해 졌다.

' 아무래도 낮잠을 자야 되겠어! '

나는 아침에 일어났던 침대로 가기 위해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 앞을 지나갔다.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화장실 거울이 나를 비추었다. 그 거울에는 폐 고철로 만든 꺼벙한 로봇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멍키스패너를 용접해서 만든 듯한 팔다리에 광학 렌즈 두 개만 덩그러니 붙은 머리....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나의 침대는....

한쪽 끝이 벽의 콘센트와 연결된 전선이 붙어있었고, 그 반대쪽은...

 내가 누우면, 누렇게 드러난 내 발바닥의 구리단자가 스프링의 힘으로 반대편 충전단자에 닿도록 만들어진 커다란 충전기였다.


 <4장>

 어두운 새벽이지만, 오늘도 알람없이 자동으로 일어났다. 아직 발바닥에 접촉되어 있던 단자에서 발을 떼고,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를 움직여 터미널로 출근을 한다.
 검은 기계들이 땅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버스의 운전석에 앉아 운행을 준비하고,
유령처럼 버스가 움직인다.
 터미널 버스 주차장안을 가득 채우던 따뜻한 피가 흐르는 생명체를 이제는 찾아보기가 힘들어 졌다.
 인간이 차지하던 기사의 자리를 HRD가 차지했다.

 나는 살아 생전에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집안의 가장이었다. 지금은 그 식구들을 위하여 버스를 운전하는 휴머노이드이다.


<해설>

미래를 배경으로 쓴 작은 소설입니다.

인간사회에서 가장의 역할과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작중 화자는 생명체가 소멸되고 해마와 기계가 연결된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1장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은 자신이 죽어서 로봇이 된 것을 인지 못하고 과거를 기억하려 애를 씁니다. 글을 긴 호흡으로 소설을 끌고 가려다가, TV 쇼핑 호스트의 멘트를 빌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짧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시라고 외람되게 짧은 해설을 댓글로 달았습니다. 님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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