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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Oct 28. 2022

'을'들의 세상

시골에서 버스 기사의 주변에는 온통 '을' 만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을'은 버스 기사들 자신이다. 박봉(薄俸)에 상대적으로 긴 근무시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다수의 소통이 불가능한 승객들...

그러나 버스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을'은 당연히 버스 회사라고 생각한다.

승객들의 민원발생 시와 동시 패션으로 나오는 보조금 삭감, 자신의 표를 의식한 선출직 공직자들의 노선 끼워 넣기 청탁들.

깊은 연못 속에 용이 되지 못하고 너무도 오래 묵어 이무기 같은....능구렁이처럼 능글능글하여 통제하기 힘들고 나이만 먹은 고집불통 기사들....

그러나 군청 교통담당은 본인이 '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쏟아지는 버스이용에 대한 군민들의 민원, 민원의 조속하고 원만한 처리를 원하는, 상부에서 대놓고 보여주는 압력...

그러나 아무래도 본인이 가장 심한 '을'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버스를 이용하는 군민들이다.

뭘 물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만 대답하는 건방지고 불친절한 시골 버스 기사들,

하루에 서너 번 밖에 다니지 않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버스의 운행시간,

승강장을 바로 내 집 앞에 만들어 주지 않는 군청의 답답한 행정...

우리는 이렇게 서로 '갑' 이면서 동시에 '을' 이기도 하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갑이 되기도, 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는 서로의 관계가 불분명한 '병' 도 존재한다. '갑' 과 '을' 사이의 대화 내용과 서로의 불만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분들은 그저 버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와 주는 것도 고맙고, 기사가 본인을 읍내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고맙게 여긴다.

하루종일 할 일이 없으니, 버스가 늦게 오든, 외딴 마을을 빙글빙글 돌아가든 상관도 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던, 이권 다툼을 하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행복하다.

그 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알 수 있다.

시골에는 이런 분들이 유난히 많다. 아니, 예전에는 너무 바삐 가느라 그런 분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 분들은 국가에서 생활비 일부를 보조해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무엇을 생산할 능력이 없으니...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런 돈들을 아깝게 여긴다. 본인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국가에 세금으로 뜯기고, 이 세금으로 이런 분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을'이 열심히 일해서 '을'을 먹여 살리는 꼴이다.

좀 억울한 마음이 들기는 하겠지만, 문명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아깝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도 '을'이고 그 분들도 '을' 이다.

그러면 도대체 '갑' 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을'로 이루어진 사회다.

소위 '갑' 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허상일 수도...

애초부터 '갑' 은 존재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미워할 대상을 '갑'이라는 명패를 붙여놓고 질투하고, 시기했는지도...


그런데 요즘 '갑'중의 '갑'이 등장했다.

서민의 삶은 먼 이웃 나라 얘기로 치부하는 멧돼지와 콜걸이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닌다.

수천억, 아니 조 단위의 혈세를 자신만의 행복과 안위를 위하여 쓰려 하고 있다. 주변의 썩어빠진 인간들도 떨어진 콩고물을 주워 먹으러 혈안이 되어 있다.

 긴급 민생 회의장에서도 실실 웃고 떠든다.

 '병'의 해맑은 미소가 아니라, '굥'의 넋 나간 썩소다.

 과연, 이런 인간들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녹봉(祿俸)을 주어야 하나?

 대통의 뇌속에 든 생각이 없으니, 지방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나라의 채권시장을 주뎅이 하나로 말아먹고 있어도 할 말이 없다. 실실 웃는것 빼고....


 자신들의 행동거지 하나와 말 한마디의 파급효과를 전혀 짐작도 못 하는 우매한 인간들이다.

자격이 안 되는 인간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으니,

자리의 무거움을 알지 못한다.

유아들 재롱잔치의 연극만도 못하는 짓거리를 자랑스럽게 생중계하는 인간들이나, 아주 좋다고 광고하는 언론들이나....에이씨....


어쩌다 나라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

시골의 초라한 버스 기사도

나라 걱정하게 만드는 꼴이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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