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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Oct 21. 2022

내적 갈등(葛藤)

괴산을 떠나 부지런히 증평역을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들러야 하는 마을을 빼먹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운행을 한 결과, 다행히 차질없이 '증평시내'에 도착하여 역 도착을 5분여쯤 남았을 무렵...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 한 기사님! 통화 가능하신가요?'

' 오~케이! 말씀하세요! '

' 혹시, 증평역 13:00 시에 출발하는 노선 조발(早發)하지 않으셨죠? '

 나는 혹시나 시간을 착각하지 않았나 하는 염려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기억을 되살렸다.

' 조발을 커녕, 일 분쯤 늦게 출발 했습니다. 하.하.하 '

'3분 정도 버스가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를 놓쳤다고 군청으로 민원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버스 시간을 착각했는지, 버스를 타지 못해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군청에 전화했는지 짐작은 가지 않지만, 내가 조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 후자(後者)가 맞을 확률이 99.9%이다.

" 한 기사님! 별 신경 쓰지 마세요! 군청에서는 그냥 그렇다고 통보한 것뿐이니..."

찜찜한 구석이 있었으나, 그냥 넘기기로 했다.


 다음날...

 바로 그 노선을 운행하시던 선배기사가 터미널에 들어온 나를 보더니....

' 한 기사! 어제 들어왔던 민원이 오늘 또 들어왔다고 하네..."

" 형님! 혹시, 조발 안 하셨죠? "

" 그럼! "

완전히 상습범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사실과 다른 민원을 연 이틀을 제기했을까?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을 텐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무실의 의견이 기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증평역에서 괴산으로 오는 13:00시 노선을 약 2~3분이라도 늦게 출발하자고...'

그 순간 시골 버스기사의 머리가 비상히 돌기 시작했다.

' 햐!~ 이놈이 원하는 것이 이거였네! 버스 출발 시각을 몇 분 늦추는 거..., 왜 그랬을까? '

먼저 내 추리를 완성 시키기 위하여, 증평역 열차 시간표를 입수하여 분석에 들어갔다.


12:59분 증평역 출발 1707 무궁화호...


증평역에 전화했다.

코레일로 대표되는 전화인지라, 증평역 직통전화번호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져 직통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 오늘 12:59분 출발하는 열차 1707호가 몇 시에 증평역에 도착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 무슨 일 때문이신가요? "

역무원이 물었다.

먼저 버스 기사라고 신분을 밝히고, 사정설명을 했다.

역무원의 대답이 왔다.

열차의 증평역 도착 시각은 12:58분이 정시라고 했고, 이날은 열차가 07초 지연 도착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날아가 듯 달려나가도 역 광장의 13:00시 버스 타는 것은 불가능 한다는 조언과 함께...

결국은 열차가 정시에 도착해도 버스를 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민원인은 항상 그 시간의 열차를 타고 증평역에 도착하여 괴산행 13:00시 버스를 탔던 것이다.

 

 내 예상으로....

시도(試圖) 열 번이면, 버스를 탈 확률이 반도 채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버스의 출발시간을 변경하려고 여기저기에 문의를 했고, 그 질문의 흔적도 동료 기사들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노선의 시간을 변경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간파한 인간이 궁여지책으로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 하여간 머리는 좋은 놈이네! '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의도 및 방법은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 내 이놈을 잡아서 기어코 물고를 내리라! '


시골 버스 기사는 이렇게 결심을 하고....

범인을 검거하러 증평역으로 출동하고자 동료 기사에게 이 사건에 대한 그 간의 추리 결과와 증빙자료, 그리고 추후의 처리 방향을 브리핑했고, 의견을 구했다.

그분 왈(曰)

" 자비를 베푸소서...."


오늘 비번인데...

자연드림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를 한 잔 시켰다. 커피잔을 보면서....

고민중이다.


' 이놈을 잡으러 가?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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