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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Oct 21. 2022

망언(妄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익히 알겠거니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지방 소도시를 꼽으라 하면 그 첫 번째 순위가 괴산군이 꼽힌다.

 지금이야 도로도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뚫리고, 험한 고개는 터널 공사도 하여 괴산읍에서 각 면까지 접근이 쉬워 졌지만, 오래된 선배 기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괴산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비포장도로에 꼬불꼬불한 산길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괴산 군청이 있는 괴산읍은 괴산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편의점, 다이소, 롯데리아 등 도시에서 들어봄 직한 상업시설들이 위치해 있고,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할 만한 식당도 여러 개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 면, '번화(繁華)'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소박한 산골 도시이다.

 도시 끝에서 끝까지 자동차로 간다고 하면 5분이면 충분하고, 걸어서 관통해도 30분이면 뒤집어쓴다.

 그럼에도 이 작은 괴산군 내에 직업소개소가 과할 정도로 여러 개 있다.


 괴산은 돈이 나올 만한 변변한 기업체가 별로 없다. 예전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중앙정부의 교부금(交付金) 없이는 군(郡)을 운영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부분의 군민이 일차산업에 종사하지만, 힘을 쓸 만한 젊은 농부는 거의 없다. 농부의 태반이 60~70대 이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하여 80세 중반의 할머니들도 고추를 딴다든가, 절임배추를 만드는 일에 투입되는 실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어르신들은 한국말이 통하는 고급인력으로 간주한다.

 괴산의 고질적인 농사의 일손부족을, 이 직업소개소들이 공급해주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결해 주기 때문에, 손바닥만 한 괴산에 직업소개소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직업소개소들은 가뭄의 단비처럼....

 농부에겐 부족한 일손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그 직업소개소들 중 하나가 괴산 시내버스 터미널 바로 입구에 있다.

 출근을 하면 보통 새벽 5시 반 정도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이제는 해가 짧져서 제법 어둑어둑 하지만, 얼마 전 까지도 주변이 환해서 직업소개소 앞에 머뭇거리는지 얼굴들이 다 보였다.

 거의 외국인들이다.

 가끔 내국인의 모습이 보이지만, 일꾼들을 데리러 온 농부들이 대부분이다.

 얼핏보이는 얼굴들은 동남아인들이 대부분이나, 아프리카계로 보이는 흑인들과 얼굴이 하얀 백인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아마도 러시아 쪽이 아닐까...


 농부들이 인부들을 데리고 갈 때면, 농사용 트럭의 짐칸에 태우고 다닌다.

 그날 아침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주변이 컴컴했다.

 하필 내가 운전하는 버스 앞에 농부의 트럭이 가고 있었고, 그 짐칸에도 몇몇 외국인 노동자가 타고 있었다. 모두 비를 피하느라 돗자리 등을 머리 위에 우산처럼 두르고 적재함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뒤쪽을 보고 있던 동남아(東南亞)계로 보이는 두 젊은 남녀와 시골버스 기사는 눈이 마주쳤다. 보는 순간, 나는 부부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자녀를 고국 땅에 두고서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하였을 두 남녀....

 나는 더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워 옆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고, 그 트럭을 추월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 두 젊은 부부의 슬픈 눈망울이 내 가슴에 박혀있는 것처럼 하루종일 가슴이 아리고 먹먹했다.


 저들도 자신들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로 이국(異國)땅에 돈을 벌러 왔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수도....

 이 지구 위를 지배하는 강자들에게 나라의 부를 빼앗기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들의 국민이라면....


 조선말기의 무능하고 탐욕스런 관료들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살았던 치욕적인 역사와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하기 위하여 총칼로 얼마나 많은 국민을

살해하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함량미달(含量未達)의 대통령을 뽑아놓은 죄로, 역사의식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들이 짖어대는 개소리와 안보(安保)라는 가면(假面)으로 국민을 협박하는, 병역 기피자들의 망언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지렁이 같은 인간들 때문에 국격은 땅에 떨어져가고 있고, 이 상태를 더 내버려두다가는 나라의 주권마저 빼앗기고,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되는 미래가 올까 두려워진다. 이 인간들은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와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적인 정신병 환자들로서, 꼴 난 주둥이의 쓰임은 먹이를 섭취하는 것으로만 사용하는 하등동물(下等動物)임이 확실하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공정과 정의는 오래전에 실종되었고, 삶의 철학도 부재중인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자식(子息)들이, 남의 나라 시골농부의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서 차가운 비를 맞는 미래가 도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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