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 기삽니다 "
중년의 남자가 터미널 홈에 대놓은 버스에 올라타면서 하는 말이다.
"이번 코스 한번 가보려구요! 타도 되죠? "
"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돌면서, 가이드가 관광객을 안내하듯이 버스가 정차하는 동네의 특징과 그 승강장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골 버스기사는 견습기사에게 브리핑했다.
서울에서 시내버스 경력만 십여 년을 했다고 하였다. 시외버스 몇 년, 고속버스 또 몇 년...
경력 합계 수십 년...
"시골버스는 안 해 보셨죠?"
"네"
" 일단, 시골길 가실 때는 맞은편 차 안 오면 가운데 노란 중앙선 밟고 다니세요! 그리고..."
" 네? "
이해가 안 가시는 모양이다.
사실 시골길은 차만 다니는 길이 아니다. 농번기에는 트렉터는 물론이고 경운기나 관리기도 다니고, 가끔씩 어르신들 전동의자도 가장자리로 다닌다. 비키라고 경음기라도 울리면, 놀라셔서 도로 안쪽으로 더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도시에서, 혹은 쭉 뻗은 국도에서 운전을 하셨다면, 시골길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다. 그것도 덩치 큰 버스를 몰고 다니려면...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내가 그동안 느낀 몇 가지를 말씀을 드렸다.
" 마지막으로 이곳의 승객은 말이 잘 안 통하는 분들이 많으니,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마음을 비우고 다니십시오! "
견습기사는 큰 가르침을 받은 학생처럼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다른 노선을 익히러 또 다른 버스로 옮겨갔다.
'시골버스를 시작한 후로 이렇게 마음이 뿌듯한 적이 있었는가?'
내 경력, 시골버스만 달랑 삼 년...
그래도 내가 그 베테랑 기사를 가르쳤다는 뿌듯함이 도를 지나쳐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다.
운행시간이 되어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은 잠시 접어두고, 터미널 홈에 버스를 댔다.
"이 버스 '승산' 갑니꺼?"
오늘 노선 중에 '성산마을'이 있다.
'아! '성산마을 가시는 분이구나!'
"네! '성산'갑니다."
"어? '승산'이던 데예! 그 '만리 장승' 할 때 '승'...
아니 이게 웬 똥고집인가? '멀쩡하게 생긴 놈이 별걸 다 가지고 시비를 붙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모르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 새로이 생겼는지 알았다. 하기야 '장승' 이 만리에 걸쳐 있으면 볼만은 할 거다.
"그러니까 이 버스는 '성산' 갑니다. '성산마을'..."
가뜩이나 밉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술 더 떠서...
"거기 승강장에 '승산'이라고 쓰여 있었는데예! 기사님이 "승산"을 모르시네..."
말귀는 알아듣는 노인이지만, 가는 귀가 잡순 분.
작은 소리도 잘 듣지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2% 부족한 사람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버스 승객 중 이런 분들이 다수 있다.
이분 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이 인간은 세 가지 경우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데 말이 안 통한다.
'이 인간을 '승산'에 내려줘야 하나? 도대체 '승산'이 존재해야 내려주지!'
"어이! 아저씨! "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였지만, 나도 열이 받아 입에서 거친 호흡이 뱉어졌다
"나는 '성산'에는 가 봤지만, '승산'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가 본 적도 없어요! 도대체 고집 피울걸 피워야지!"
"이거봐요! 아저씨! 입이 경상도인 건 알겠는데...
"어째 눈, 귀도 경상도여?...
시골 버스기사 삼 년 가지고는 마음이 안 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