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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Nov 07. 2022

양자역학2

"아저씨! 버스요금 얼마 내신 거예요?"

"천 사백 원 !"

연배도 나랑 비슷하게 먹어 보이는데, 반말 찌거리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그놈과 같은 값어치의 인간이 되기 싫어, 최대한 점잖게 대화를 이끌어 갔다.

" 카드로 내시면 1,400원이고, 현금으로 내시면 1,500원입니다. 그러니 100원 더 내십시오!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못 알아들으셨나요?"

버스는 움직이지 않은 체로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 있던 그놈이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와 100원을 돈 통에 떨구었다.

" X발, 누가 그깟 돈 떼먹나! "

돈 통에 돈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 아! 정말, 재수 없는 놈일세! 분명히 나 들으라고 한 말인데... 못 들은 척할까? 아니면, 한 마디 대꾸 할까? '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 내가 뭐라고 한마디 더 하면 나한테 대들 거고, 그러면 한 대 쥐어박어?...그러다가 개 값 물어주면...아니면, 저놈한테 한 방 얻어터지고 병원에 누워서, 위자료를 뜯어낼까? 그럼,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나? 동전 백 원 아끼는 걸 보니 꼬락서니가 형편없는 놈인데, 내가 뜯어낼 돈이 그놈에게 있기나 한 걸까? '

백 원짜리 동전 한 개로 시작한 상상이 변호사까지 나왔다. 동시에, 한심한 나 자신에 대한 비웃음도 같이 나왔다. "흣! 흣!~ "

연이어 그놈의 파상공세가 시골 버스 기사의 뒤통수를 두들기기 시작하였다.

" XX 새끼 백 원짜리 하나 가지고 애 나무라듯 지랄하네! X 팔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엉?"

버스 룸미러로 살펴보니,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금방이라도 나를 두들겨 팰 듯한 행동이 가관이었다. 그놈이 그렇게 과장스런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평상시 백 원씩 덜 내고 다녔던 행위가 발각되어서이거나, 함께 승차한 중년의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여겨져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버스에 승차한 중년의 여성들 중 한 명이 한 마디 거들었다.

" 그만들 하세요! 그리고 기사님도 그만 하시고요! "

'아니, 저 여자는 내가 뭔 말을 했기에 나한테 그러시나...허~참! '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의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사물(事物)들 즉, 물질, 시공간, 에너지 등은 입자(粒子,particle,corpuscule)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자(電子, Electron)가 상호작용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사물은 한 상호작용에서 다른 상호작용으로 도약할 때에만 존재한다. "

여러분은 이 말의 뜻이 이해되시는가?

" 양자역학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양자역학 이론을 누구보다도 잘 다룬다는 리처드 파인먼(Richard Phillips Feynman)의 명언에서 알 수 있듯이 카를로 로벨리의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괴산 시골의 버스 기사는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버스비 백 원 덜 낸 놈하고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병원에 누울 일도, 변호사를 부를 일도...혹은, 그놈을 한 대 쥐어박을 용기가 있으려면, 평상시 특공무술 같은 무예를 연마해야 하는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

내가 눈 감고 귀 막고 있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실재(實在, reality)이다.

시골 버스 기사는 백 원짜리 동전 한 개 때문에 버스 안에 퍼졌던 그놈의 욕지거리가, 내 귀에 전달되기 5분 전까지 카를로 로벨리의 물리학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려 입술을 깨물고 고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을 보고 딱 한마디만 했다.

" 요기 요거이 카메라요! 여기 당신의 행동과 소리가 다 기록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선은 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이 얼마나 신선하고, 신사적인 멋진 발언인가?

버스 안의 모든 승객이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그때부터 버스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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