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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Nov 10. 2022

양자역학3

우리의 인생은 시골버스와도 같다.

마음속으론 뚜껑이 없는 무개차(無蓋車, open car)에 팔등신 미인을 옆자리에 태운 채 쭉 뻗은 신작로를 달리고 싶지만, 지린내 풍기는 골목길 같은 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다.

주머니에는 두둑한 지갑 하나만 챙겨, 2인승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서 평탄한 고속도를 질주하는 것은 선택받은 일부 특정인의 호사스런 자랑질일 뿐이다.


무한루프처럼 다달이 돌아오는 은행 대출금의 이자 납부일, 애들 대학 학자금, 임피제에 걸려있어 뱀이 개구리 녹이듯 점점 줄어드는 쥐꼬리만 한 월급, 하루하루 나날이 숨통을 옥죄여오는 정년... 이런 일들이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는 한 가득하다.

버스를 몰고 다니는 버스 기사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승객들이나,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각자의 인생의 길을 간다. 그러나 그 길에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동승하여,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목적지까지 묵묵히 간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버스의 승객과도 같다. 커다란 버스를 함께 타고 있는 승객은 목적지는 서로 달라도, 버스에 타고 있는 시간만큼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버스가 달리면 모두가 같이 달리고, 내가 내릴 곳도 아닌데 승객 중 한 사람이 버스에서 내릴 때면, 모두 같이 정지하여야 한다.

버스안의 일반 승객들과 섞여 있던, 추악한 성추행범이나, 소매치기 때문에 경찰서 마당에서 하차했던 경험이나, 급작스런 환자 발생으로 병원 응급실 앞에서 모든 승객이 버스에서 내렸던 사실들이 내가 이 세상을 혼자 살고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 관계없이...

삶이란 시계는 내가 세운다고 서 있지도, 빨리 돌린다고 빨리 돌지도 않는다.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삶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신의 의지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자기만족이란 최면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의 세계에는 세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어 계(界 , system)의 상태 정보는 유한하다는 '입자성' 과 둘째, 미래는 과거에 의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비결정성' 이다.

그리고 마지막....자연의 사건들은 언제나 상호작용이어서 '실재(實在, reality)는 관계적이다.' 라는 '관계성'이다.

세 가지 모두 이해하기가 만만한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고, 되뇌어 또 읽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해 보았다.

첫째,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의미 없는 입자로 이루어져, 일정한 개수(프랑크 상수)의 입자들이 모여야만 특성을 나타낼 만한 물질이 되므로 결국 혼자서는 무의미하다.

둘째, 내가 과거에 행하였던 일이나, 행적이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지 않다. 양자의 비결정적인 특성 때문에, '그렇게 될 확률이 있다.' 라는 정도까지만 이야기 할 수 있다.

세번째, 우리가 사는 사회 또한 서로 상호적이어서,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타인의 행동이 나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양자물리학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을 부정하거나,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성공이나 실패가 남보다 탁월한 능력이나,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현대의 첨단 물리법칙이 대변해 주고 있다.

더구나 부의 축적이나, 높은 지위의 삶이, 곧 성공이라는 명제(命題)도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고 기뻐해야만 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이다.

특히, 이 이야기는 시골 버스 기사인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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