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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Dec 22. 2022

오창 가는 길 2

<오창 가는 길 2>

'오창'에서 '증평' 쪽으로 가다 보면 중간쯤 '유리'라는 정류장이 있다.

 이 정류장에서 칠십 대 아주머니 한 분이 타신다. 그리고 5~6km를 더 가다가 '증평' 못 미쳐 '사곡'이라는 정류장에서 내리신다.

 '사곡'에서 '유리'를 가실 때는 시간이 안 맞아서 그런 건지, 기사가 맘에 안 들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오창''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가고, 반대로 오실 때에만 우리 버스를 이용하신다.

 그날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버스 바깥은 영하 기온이었고, 전날 눈이 와서 그런지 몰라도 바람이 몹시 불었다.   증평에서 '오창'을 향해 부지런히 버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고 '유리'를 지나는데 바로 그 아주머니가 반대편 승강장에 앉아 계신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오창''을 돌아 그곳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중이었다. 클랙슨을 살짝 누르니 버스를 쳐다보신다.

' 아주머니 추운데 버스에 타세요!'

앞문을 열고 크게 소리쳤다.

 아주머니가 이런 상황에 익숙하신 듯 두 말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오셨다.


 " '오창'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거기에 계시면 추우실 것 같아서 타시라고 했어요! 단, 버스비는 두 번 내셔야 합니다. "

혹시 미안해서 쑥스러워하실까 봐 어색한 농을 건넸다.


 "난 매일 이렇게 타고 다녀도 버스비는 한 번 밖에 안 냈는데...."


 '어? 이상하네! 나는 오늘이 처음인데, 다른 기사가 벌써 생색은 다 내고 다녔나? 그래서 이런 상황에 익숙하셨구나! '


 "한번 웃자고 그냥 해본 소리니, 마음 쓰지 마세요! "

 

 시골 기사의 농을 진정으로 알아듣고 버스요금 두 번 내실까 봐 바로 이실직고했다.

 연세가 74세라고 했다.

 직업은 요양보호사라고 하셨고,  '유리'에 돌보는 어르신이 있어, 일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중이라고...

 남편은 은행원 출신인데, 퇴직하고 사슴농장인가 하다가 들어 잡숫고, 지금은 양봉업자로 변신했지만, 꿀 팔아 벌어오는 돈보다, 벌 키우는데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 아저씨에게 꿀벌농사짓지 말라고 하세요! "

 "기사 양반 내 얘기가 그 얘기라니까! 손해를 보는 벌을 왜 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내가 이 나이에 요양보호사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요! "

 " 아저씨가 재산은 많으신가요? "

 "다 들어먹고, 지금은 십 원짜리 한 장 없슈! 내가 그런 인간인 줄 알았나? 그럴 줄 알았으면 시집 안 가는 건데... 조금 젊었을 때 이혼하려고 했는데, 그때 할 걸 잘못했어! 지금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있는데..."

 " 아주머니 위험한 발언입니다."

 "괜찮아요! 집 나오면 따뜻하게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데... 하하"


 아주머니는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 아주머니의 옷도 얼굴도 일 년 전보다 더 화사해진 것도 같았다.


 아! 나도 이럴 때가 아니다. 진짜 아내 얼굴 자세히 본 지도 오래되었다. 혹시, 아내 얼굴이 화사해졌는지, 오늘은 자세히 좀 봐야겠다.

 이렇게 무관심하다가 아내에게 쫓겨나면, 이 추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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