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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Jan 04. 2023

오향골

이번 달 노선중 '괴산읍'에서 '청천면'으로 하루에 5번 왕복하는 코스가 있다. 제가 항상 말씀드렸듯이 시골버스는 목적지까지 그냥은  절대로 안간다. 외딴 마을을 들르던가, 아니면 뱅글뱅글 돌아서 가던가 둘 중의 하나다.

이번 노선 또한 그냥 갈 리가 있겠는가? 물론, '소들마을'이라는 곳을 들려서 간다.

괴산읍에서 청천면으로 가는 막차의 괴산 출발 시각은 오후 5시 40분 이고, '소들마을'에 도착시각은 20분 후인, 오후 6시쯤 된다. 이렇게 자세하게 시간을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다.

'소들마을'에서 약 5분쯤 걸어 나오면, 청천에서 괴산으로 가는 큰길이 나오는데, 6시 15분쯤에 괴산 가는 버스가 지나간다.

그 마을에서 괴산으로 가고 싶으면 그 버스를 타고, 청천으로 가고 싶으면 마을로 들어온 이 버스를 타면 된다.

소들마을에 사는 주민이면, 당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괴산에서 마지막 배차시간에 맞추어 청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문제의 '소들마을'을 통과하는데, 남녀 학생 두 명이 버스를 세운다. 남학생은 집이 '소들마을' 인지, 버스에는 타지 않고 잘 가라는 말과 함께 친구에게 손만 흔들고, 여학생만 버스에 올랐다.

"카드 잔액이 부족합니다."

"어! 이상하다."

학생은 다시 버스요금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그러나 역시 단말기 대답은"카드 잔액이 부족합니다." 였다.

아마도 잔액 확인을 안 한 것 같았다.

" 내일 내던가, 아니면 생각날 때 내던가 하고 오늘은 그냥 가자!"

드디어 청천 터미널 도착.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그 여학생이 개미 소리만 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 아저씨! 혹시, 이 버스 괴산으로 가나요?"

" 그럼! 가지! 다시 괴산 가시게? "

" 네! 근데 몇 시에 가요? "

그 버스는 오후 6시 40분에 청천을 출발하여,괴산읍 도착 예정 시간이 오후 7시 20분쯤 된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싸아하다.

그 학생의 목소리 톤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자초지정을 들어본 결과...

괴산 고등학교 2학년이랬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칠성면 집에 가는 길인데...

소들마을에서 괴산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칠성면으로 가는 저녁 7시 막차를 탔어야만 했다. 그런데 청천으로 오는 버스를 잘 못 타는 바람에 집에 못 가게 된 것이다.

여학생을 배웅하던 그 녀석이 엉뚱한 버스를 태워 보낸 것이다.

" 어떻게 하냐? 오늘 버스 다 끊겼는데...

그리고 차비도 없다며…. 그런데, 학생 집이 칠성면 어디야? "

" 오향골 이요! "

여학생은 이미 울상이 되어 버렸다.

" 같이 있던 그 남학생이 학생 친구야? "

" 네!"

' 참으로 웃긴 놈일세... 아니 이 엄동설한에 여자 친구 골탕을 멕이려고 했나? '

시골 버스 기사 혼자 생각해 보니, 그 남학생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울상인 여학생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 아저씨가 '오향골'옆에 '사오랑'에 살아! 오늘 일찍 퇴근하는 날이니, 내가 데려다 줄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 네! 거기 알아요! 너무 고맙습니다."

"학생! 모름지기 남자는 주변을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본인이 좀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데, 자네 남자친구는 그런 점이 부족한 것 같아...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

"네! 그런 거 같아요!"

수긍하는 눈치다.


이 세상의 모든 장인은,

이 세상의 모든 사위가 도둑놈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골 버스 기사 본인도 멀쩡하게 잘 지내는 우리 장인어른의 귀중한 딸을 도둑질해다가 삼십 년을 고생시켰으니,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더라도 딸을 키우는 부모 입장으로, 혹은 그 여학생의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라도 할 말은 했다.


" 아저씨가 하는 말을 따라서, 아저씨가 선창하면, 네가 후창해! 그리고 그대로 네 남자친구에게 전해! 알았지! "

"네! "


"버스 기사 아저씨가~"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앞으로..."

"앞으로... "

"너랑 사귀지 말래!"

"너랑 사귀지 말래!"

"하,하,하..."

"호,호,호..."

나는 무사히 그 학생을 귀가시켰고, 우리는 흥겨운 웃음으로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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