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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Jan 05. 2023

'숫고개'아저씨

 저녁 7시쯤,

 '증평' 우체국 승강장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 숫~개 가!~ "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으나, '이 버스 '숫고개' 갑니까?'로 이해했다.

 그 아저씨가 결코, 시골 버스 기사에게 반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까칠하던 시골 버스 기사가 어떻게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적 관점의 관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독자들은 이해가 되지를 않겠지만, 그 아저씨가 버스에 올라와서 한 행동들을 보면 이해할만하다.

 완전히 술에 취해 꽐라가 되어 있었다.

 마스크도 안 하고, 버스 요금도 내지 않으시고...

 같은 곳에서 승차한 아주머니도 한 분 계셔서, 일단 마스크 착용을 아저씨에게 권고하였다.

 그래도 들은 척을 안 하니, 같은 곳에서 승차하셨던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신다.

"기사가 마스크 하라잖아요! 어! 저기 마스크 떨어졌네!"

"기사 아저씨! 뒷문 좀 열어 줘 봐유!"

 나는 군말 없이 버스 뒷문을 열어 드렸다.

 그러나 바깥에 떨어져 있던 마스크는 그 아저씨 것이 아니었다.

"마스크 하지 않아서 기사가 내리라잖아요!"

'어허! 내가 언제 아저씨더러 내리라고 했지?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아마도, 이 아줌마가 술에 취한 사람과 함께 가기 싫으신 모양이네! '

"제가 언제 아저씨에게 내리라고 말했습니까?

아주머니가 없는 말을 하시네요! 허,허!"

 룸 미러로 보니, 아주머니와 버스 기사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아저씨는 마스크를 어디서 꺼냈는지 착용하고 버스 좌석에 자리에 벌써 착석한 상태였다. 버스 요금은 도착지에 도착해서 낸다는 말씀과 함께....

 버스안에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가, 개 코를 지닌 버스 기사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숫고개'까지만 가면, 그 꽐라 아저씨가 내린다는 보장이 있으니 참을만하였다.

 드디어 버스는 '숫고개'에 도착하였다.

 아저씨는 내릴 준비를 하시고...

"아저씨! 버스요금 내셔야죠? "

가타부타 말씀이 없다. 아니, 들은 척도 안 한다.

 버스에서 내리시는데 걸음이 비척비척 위태하기 그지없다. 괜히 버스요금 때문에 신경을 쓰다가 넘어져서 다치실까 봐 걱정이 되어, 더는 버스요금은 거론하지 않았다.

"기사 양반! "

"네!

"저 아저씨 버스요금은 내가 받아 주리다!"

"아니, 어떻게 받아 주시려고요! "

"내가 저 아저씨 아줌매를 잘 알아유! 내가 아줌매에게 일러서 받아 줄게요! 술에 취해서 차비도 안 내고 그랬다고... 기사님도 그 아줌매 잘 아시죠?"

'아니, 내가 어떻게 그 꽐라의 어부인을 안단 말인가? 이 아주머니가 착각하고 계시나....'

내 황당한 표정을 살피던 아주머니가 다시 얘기했다.

"새벽에 '숫고개' 첫차 타고 증평으로 일 나가는 아주매 몰라유? "

'아! 그럼 저 꽐라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근하시느라 고생하시던 그 아주매의 남편...'

그리고 아주머니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한마디 더 했다.

" 그 집 하고, 우리하고는 사돈 간 이유! "


시골 버스기사 입에서 나도 모르게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꽐라 이 인간...여기저기 민폐만 끼치는 인간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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