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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Feb 27. 2023

고마워유! & 미안허유!

 승강장에 한 할머니가 서 계신다.
가능한 한 많이 걷지 않으시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승강장에 최대한 가깝게 정차하여 드렸다.
"아유! 고마워유!"
 고마운 이유에 대하여 주절주절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시골 버스 기사는 그 이유를 안다.
 뼛골 빠지는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 밭으로, 논으로 당신들의 몸뚱어리를 혹사해오신 어르신들에게는,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버스에 오르시는, 별거 아닌 일들이 몸의 기를 모아서 혼신의 힘을 써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버스에 오르시는 팔 할 이상의 노인분들이 입으로 영차영차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버스에 오르신다.
 그런 분들에게 승강장에 가깝게 정차한 버스는 고마울 따름이다.

 시골 버스를 운행하는 거의 모든 버스 기사들은 그런 사정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버스 승강장의 구조상 버스를 가깝게 정차하지 못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승강장 지붕이 너무 많이 돌출되어 있다던가, 승강장의 바닥 높이가 버스 계단과 맞지 않는 경우다.
 원래 설계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시공문제인지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그따위 자잘한 일에는 신경을 안 쓴다는 점이다.
 공무원도 시공업자도....
 버스기사가 나름의 호의를 베풀려다가는, 승강장 지붕에 사이드미러를 부딪치거나 버스 모서리를 인도와 충돌하여 찌그러뜨리기 십상이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만날 때, 내가 기준이 되어 상대방에게 생기는 감정들이 있다. 그 할머니는 기사에게 고마운 감정이 생기신 것이다.
 이 고마운 감정은 미안한 감정을 동반한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기사에게 누가 되었다고 느끼신 것이다.
 버스를 승강장에 가깝게 정차한 덕분에 버스에 첫발은 쉽게 들여놓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유명한 등산로의 필수요소인 깔딱고개 같은 두 번째 버스 계단이 앞을 가로막는다. 온 힘을 다하여 오르시지만,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을 소요한다. 그래서 '고마워유!' 말씀 다음에, 음식점 세트메뉴 같은 '미안해유!'란 문장이 쫓아온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은 등을 맞대고 있는 한 몸 같은 존재다."
 
 고마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고마움을 준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진다.
 상대방의 호의를 자신의 당연한 권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애초부터 미안한 감정이 생길 공간이 마음에 존재하지 않았다.

 장날이면, 거르지 않고 내가 운전하는 버스에 오르시며 항상 나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던 어르신이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그 동네의 소식에 정통한 동료기사의 전언에 의하면, 올해 초에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세상사는 일이 순리에 맞게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서글픈 감정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른다.
 대신에, 그 어르신이 타시던 그 마을 승강장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시골 버스 기사는 예전과 동일한 요령으로 버스를 정차시켰다.
"아! 가까이 대주니 버스 타기가 이렇게 쉬운데, 다른 기사는 왜 멀리 대서 늙은이를 힘들게 하누? 민원을 넣든지 해야지...원..."
 
 고맙다는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것도, 칭찬을 듣고자 한 것도 아니다. 결국, 내 친절은 동료기사 욕 먹이는 행위가 되었다.
 그래서 시골 버스 기사는 결심했다.
 '앞으로, 내가 저 승강장에 버스를 가까이 대면 성을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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