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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Mar 22. 2023

나는 괴산에 산다

감물로 도착하기 전 "신기"라는 버스 승강장이 하나 있다. 이 승강장 앞뒤로 신호등이 두 개가 있다.

약간의 커브가 있는 도로로, 신기마을 반대편 공터에 경찰차를 세워놓으면 신호등을 지나기 전까지는 경찰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경찰관은 가끔 이곳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단속하곤 했다.


그날도 시골 버스는 정해진 노선에 따라 괴산 터미널을 떠나 감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신기" 승강장 근처에 이르러 신호등이 파란불이면 마음 편하게 통과를 하지만, 빨간불이면 버스 기사는 고민이 생긴다.

'이걸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

 사실 교통신호를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신호위반을 시도하려는 심리 상태를 나 자신도 이해를 못 할 때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호를 지키면 된다.

 신호를 지키지 않고 적색 신호등에 그냥 지나가거나, 또는 파란 신호를 기다렸다가 지나가더라도 시간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시골 버스 기사는 빨간불에 지나갔다.

 교통법규를 위반하고자 의도했건, 의도치 않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건, 빨강 신호등이 방배동 룸살롱 거리에 네온사인처럼, 도로 위로 야한빛을 쏟아냈지만, 시골 버스는 쏜살같이 그냥 지나갔다.

 커브를 도는 순간...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거리면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하는 불빛으로...

"기사님! 신호를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멈칫도 안 하시고 그냥 내 달리시던데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일단, 스티커 발부하겠습니다."

"경관님 싼 걸로 끊어주세요!"

"벌점 없는 스티커로 발부했습니다. 안전운전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경관이 나를 반성하게 해 주어서인지, 아니면 스티커를 싼 걸로 끊어 주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경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괴산같은 산골 마을에 무슨 신호등이 있으며, 교통법규 위반을 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꼭,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라면 호랑이가 기어 나올듯한 산골에서도 적용된다. 산골 마을 이라고 너무 무시하지 마라! 불타는 강남역 앞에서만 음주 단속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괴산 소방서 앞에서 음주운전 단속도 한다.

 읍내에 나가면 피자집과 치킨집도 있다. 비록 칠성면에 있는 우리 집까지 배달은 해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괴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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