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원 Apr 11. 2023

시골 버스와 파리채

 여러분은 시골버스를 타 보신 적이 있는가?
혹시 시골버스를 타시게 되면, 운전석 근처를 유심히 보시라...
차종이나 노선, 혹은 운전자의 성향 및 생김새 등...지금까지 나열한 요소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이, 저런 파리채를 반드시 발견하실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발견을 못 하셨다면, 그 버스는 분명히 시골버스가 아니었거나, 당신의 관찰력이 형편 없음을 방증(傍證)하는 것이다.
 그럼 저 파리채의 용도는 무얼까?
 시골버스기사도 처음 파리채를 보았을 때, 그 용도가 진정으로 궁금하였다.
 그러나 용도는 단순하다.
그 파리채는 파리를 때려잡는 데 쓰거나, 가끔 버스 안의 벌을 잡을때 사용한다. 꿀벌은 물론, 말벌, 혹은 꼬마쌍살벌 등...버스에 무임승차하는 곤충들 중 무기를 소지한 놈들을 때려잡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물론 그 벌들이 승객이나, 버스 기사를 꼭 해코지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러나 열심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버스 기사에게 그 무기가 사용될 경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예견을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사람의 목숨을 위하여 벌들의 희생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시골 버스가 운행하는 지역이 대부분 산길이나, 들판을 가로지르는 시골 길이다 보니, 주변에 살고 있던 온갖 곤충들이 승객과 함께 버스에 승차한다.
 승객이 승.하차하거나, 파란색 신호등을 기다리느라 버스가 정차에 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파리채가 등장하여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도의 비행술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비행 물체를 날렵한 팔 동작과 함께 '따~악!' 하고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로,
한 번에 제거했을 때의 느낌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 한 방으로 그날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한 생명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 느끼기도 하지만...

 지금은 꽃피는 4월이기는 하지만, 괴산은 겨울이 무색할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추위가 느껴진다.  곤충들이 인간들보다 기온에 더 예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하니 조금이라도 따뜻한 버스 실내로 들어오려고 버스 주변에 서성거리며 대기하였다가 승객들이 내리고 타는 틈을 이용해 버스로 올라온다.
 아예 단체로....
 한 두 마리 정도는 사극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 제일의 검객과 같은 자세로 파리채를 휘둘러 파리를 잡았으나, 특정한 계절에는 대여섯 마리가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형국이니, 터미널에서 쉬는 시간을 할애해 일망타진하기도 한다.
 그런 절박한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버스 밖에서 보면, 기사가 실성하여 남몰래 춤추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따뜻한 봄날...
버스 바깥의 풍경은 온통 화려한 꽃으로 그려놓은 듯하다. 바야흐로 온갖 곤충들이 활개를 치며, 자신들의 푸릇한 생명을 마음껏 펼치는 시절이 온 것이다. 몇몇 호기심이 강한 꿀벌들은 들판에 피워있는 꽃보다 버스 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인간이 더 관심이 가는지, 아니면 버스 기사가 신기한 것인지, 버스기사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이분 정도 춤을 추었을까...
 운전석쪽 창문으로 들어온 벌에 목 뒷덜미를 쏘여, 목 뒤가 혹처럼 부어올라 고생하던 옛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가뜩이나 곤충을 무서워하는 덩치가 큰 버스 기사는 소 눈방울처럼 커다랗게 변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곡예비행을 하는 벌을 눈으로 좇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하니 제대로 운전이 될 리가 있겠는가? 급기야는 과속 방지 턱을 그냥 타고 넘어, 버스가 점프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버스 기사를 비롯하여 버스 안의 모든 승객과 승객들의 소지품들이 크게 들썩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버스 안에는 두 명의 젊은 승객만 있어서 큰 화는 면할 수 있었다.

 '내 저놈을 잡고 말리라!'
 시골 버스 기사는 굳은 결심을 하고, 일단 버스를 한적한 길가에 세웠다.
 오래전 내 베개에 자신의 냄새를 뿌려댔던 샴고양이를 아내 몰래 교육시키던 실력을 되살려, 파리채를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버스 안을 활보하는 꿀벌을 향하여 정의의 파리채를 휘둘렀다. 육십 줄에 들어선, 머리 허연 배 나온 사내의 그 꼴이 우스워 보였는지, 버스 안은 연인으로 보이던 두 젊은 남녀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나는 멋적은 웃음으로 창피함을 가리려하고 있었다.

'그래! 저 꿀벌도 시골 버스 기사가 좋아서 구경하러 온 것이니, 죽이지 말자! 구경하다 재미없으면 밖으로 나가겠지! '

시골 버스 기사는 운전석 주변의 버스 창문을 열어놓고 파리채를 제 위치에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버스 운행을 다시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책을 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