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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May 28. 2023

이직을 했습니다.

제가 시골버스에서 고속버스 기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한 이유에 대하여 장황하고 주절이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어서 더 이상의 이유는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결코 시골버스가 싫어서 이직한 것은 아닙니다. 얻고자 했던 에피소드를 모두 얻어내고, 책으로 냈으니 시골버스의 효용가치가 소멸하여서 고속버스로 이직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시골버스 기사로 근무한 지가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글을 쓴 지도 4년이 넘었습니다. 그 결과로써 팔자에 없는 책을 냈었습니다. 그 책은 제가 평생에 쉽게 얻지 못할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제 졸문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실 시골 버스 안은 제가 그동안 꿈꾸어왔던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직한 고속버스 안에는 개 사료를 들고 버스에 승차하는 승객이나, 보행 보조기를 들고 버스에 오르는 노인분들도 없습니다. 흙 묻은 장화에 작업복차림의 승객들도 당연히 없습니다. 모두 세련되고 깨끗한 복장에 날렵한 구두들을 싣고 있습니다.

 기사에게 괜히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목적지까지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사람으로만 보입니다. 고속버스 안에는 시골 버스처럼, 제가 권력을 행사하여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페친이 한 분 계십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책의 서평을 써주신 분입니다.

 이분은 힘없고 이름 없는 작가들이 발표한 詩나 소설 등의 서평을 써주십니다. 험난한 들판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의 이름을 모두 지어주듯, 엄청난 독서량과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지적능력으로 우리 주변에 출간되는 작은 책마저 소홀히 여김 없이 모두 읽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무명작가들의 대모 같은 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들이 이분에게 고귀한 명예나 금전 전 대가를 주지도 않습니다. 오롯이 약자를 돕는, 순순한 마음으로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요즘 이 분이,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견제(牽制)'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이 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이 기존 문학계의 틀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 만한, 파급효과가 큰 사건이기 때문에 기존 문학인들이 더 두려워하고 견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합니다.

 더구나 그곳에 안주하고 있던 기득권들은 새로운 틀이 더더욱 공포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제 바람이 있다면, 이분에게 이분의 선한 의지가 구석구석 스며드는 문학계의 작은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시골 버스 기사가 그토록 꿈꾸어 왔던,

약자가 배려받는 시골 버스 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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