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기사가 된 후로는, 고속버스 기사에 이름에 걸맞게, 주로 다니는 길이 고속도로다.
내가 운행하는 버스는 괴산에서 출발하여 증평을 들러 승객들을 태우고, 한 번도 쉼 없이 강남 센트럴시티 터미널까지 들어온다. 서울에 입성(入城)하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 정 코스이다. 경부고속도로의 버스전용차로를 발바닥이 저리도록 스로틀페달을 밟아 분당과 판교를 지나면 서울과 경기도를 구분하는 고개가 하나 나타난다.
이름하여' 달래내고개'...
괴산에서만 돌아다닐 때에는 교통방송이나, 고속도로 교통현황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서울로 오가는 요즘은 교통방송의 가장 큰 주연배우급 이름인 '달래내고개'란 이름이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사실 '달래내고개'의 유래는 19금적인 이야기와 근친상간의 불순한 의도가 깔린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어찌되었건 이 '달래내 고개'는 운전자들에게는 고통의 시작이자,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이 달래내고개는 내가 서울로 들어왔다는 느낌을 강제로 느끼도록 하는 마력이 있다. 여기서부터 지옥 같은 교통체증이 시작한다.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자동차의 끝없는 행렬, 행렬....
그러나 버스전용차로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힘을 발휘하며, 나 자신이 버스 기사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거침이 없다. 누군가가 전용차로에 끼어들거나, 전용차로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버스전용차로로 주행하는 버스들도 서로 앞지르기를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전용차로에서 잘 달리고 있는 버스가 굳이?..."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것이다.
서울 외곽도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광역버스, R 버스, M 버스, 이층 버스 등도 버스전용차로를 사용한다. 이 버스들의 평균주행속도는 80 km/h 정도 된다. 필자가 몰고 다니는 버스는, 그래도 명색이 고속버스이어서 평균 속도가 100km/h를 넘나든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앞차를 앞지르기해서 가는 수밖에 없고, 앞서 가던 버스가 비켜주지 않는 한, 내가 옆 차선으로 나가서 앞서 가는 버스를 앞지르기한다.
배차를 받고 버스 운행을 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앞서 가던 이층 버스를 추월하기 위하여 옆 차선으로 차로를 변경하던 그 순간이 하필 '달래내고개' 정상부근이었다. '달래내고개' 부터는 버스전용차로를 벗어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던 선배기사의 조언을 까맣게 잊은 채...
육중한 버스를 끌고 전용차선을 벗어난 나온 순간....
엉덩이를 벌겋게 물들인 꼬물꼬물한 자동차들이 언덕 밑으로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내 눈앞에 들어왔다.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쓴 가장의 심정일까? 끈 떨어진 연이 갈 곳을 잃고 언덕 너머로 처박힐 때의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도 아니면, 괴산 촌놈은 서울에 들어오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지도 몰랐다.
그 짧은 상황에서도 머릿속은 분주히 돌아갔다.
우선, 정지해 있는 듯 보이는 앞차들과의 추돌(追突)을 피하고자 버스 안의 사용 가능한 브레이크는 모두 동원했다. 일단 저단으로 기어를 갈아 넣어 엔진 브레이크를 걸고, 승객들이 충격받지 않도록 풋 브레이크를 조작함과 동시에, 엔진 배기 브레이크를 작동시키고, 리타더 브레이크(retarder brake)를 사용하여, 버스를 최대한 부드럽게 정지하였다.
'38년 운전 경력을 이런 데서 써먹는구나!'
먼저, 신에게 감사드렸고,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바로 뒤를 이어 본인이 사고치고, 본인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어색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달래내고개' 는 서울에 입성한 괴산의 시골 버스 기사를 오줌지리게 하는 경각심(警覺心)으로 환영해 주었다.